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6] 미니멀리즘은 줄이고 빼고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16] 미니멀리즘은 줄이고 빼고 버리는 것이다
  • 엄윤숙 프리랜서 작가
  • 승인 2020.01.17 13:26
  • 호수 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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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은 줄이고 빼고 버리는 것이다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을 줄이면 일이 줄어든다.

生事事生 (생사사생)

省事事省 (생사사생)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제12권「야율격언(耶律格言)」


해야 할 일도 많고, 사야 할 것도 많고, 먹어야 할 것도 많고…. 오늘날 우리의 삶은 너무 많은 것들로 꽉 차 있어 온통 뒤죽박죽이다. 어쩐 일인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헝클어지고, 먹으면 먹을수록 더 헛헛해지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열병처럼 유행처럼 미니멀한 삶에 대한 동경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좀 더 단순하고 단단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의 말이다. 미니멀리즘은 우리들에게 무엇이 행복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줄이고 빼고 버리는 것이 그 해답이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런데 나는 이런 미니멀리즘이란 낯선 개념과 제안에서 문득, 이익의 ‘생사사생 생사사생(生事事生 省事事省)’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겹쳐 떠올랐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은 무슨 일을 할 때 굉장한 일을 하려고 덤비지 말고, 일을 줄여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미니멀리즘이 이미 있었다. ‘미니멀리즘’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것이야말로 우리 옛사람들이 가장 바라고 원하던 삶의 원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멀한 삶에는 특별히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단지 정갈한 밥을 먹고, 단정한 옷을 입고, 깨끗한 이불을 덮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마음 맞는 친구와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된다. 그뿐이다. 세상은 더 큰 집으로 행복의 크기를 키우고, 더 높은 학벌로 우아하게 교양을 쌓고, 더 비싼 음식으로 삶의 품격을 높이고, 더 희귀한 상표의 옷으로 개성을 살리고, 더 대단한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구축해 힘 있는 사람으로 살라고 권한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은 세상이 강권하고 유혹하는 그런 거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선언이다. 내게 꼭 필요한 것에만, 내가 진짜 행복해지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다짐이다. 하나라도 더 채우고 보태고 팔아치우고 싶어 하는 세상의 거대한 힘에 굴하지 않고, 줄이고 빼고 버리겠다는 안간힘이다.

‘생사사생 생사사생(生事事生 省事事省)’. 일을 만들면 일이 생기고, 일을 줄이면 일이 줄어든다. 내 삶에서 소란과 복잡함이 차지하고 있는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빼고 버려야, 비로소 그 자리에 고요함과 단순함이 깃들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진짜 나와 마주하는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미니멀리즘은 내면의 가장 깊숙한 행복과 마주할 고요한 공간을 사수하는 일이다.    

엄윤숙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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