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냄새 타령”
[백세시대 / 세상읽기] “냄새 타령”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1.17 13:44
  • 호수 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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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택시를 탄다. 그날은 ‘백세시대’ 신문을 마감하는 날이다. 하루 종일 기사 쓰고 팩트 확인하고 교정 보다보면 체력이 소진해버린다. 버스, 전철을 갈아타며 1시간 넘도록 대중교통편에 시달리며 퇴근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저녁 8시경 홍대역 앞에는 빈 택시들이 늘어서 있다. 비가 오거나 유난히 추운 날은 택시 줄이 보이지 않는다. 

택시를 탈 때마다 기자는 불안하다. 냄새 때문이다. 개인택시든 영업용택시든 노인이 운전하는 택시 대부분은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정도가 너무 심해 코가 얼얼할 때도 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세워달라고 싶지만 환승이 되는 버스도 아니고 해서 간신히 차창을 살짝 내리고 목적지까지 참고 간다.

그런데 그 냄새라는 게 젊은 기사나 여성 기사-70대일지라도-에게선 잘 맡을 수 없다. 유독 노인에게서만 난다. 어떤 냄새인가 말하라고 하면 정확히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냄새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 등 세계적인 권위 있는 영화상을 두루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오른 영화 ‘기생충’의 반전 포인트는 ‘냄새’이다. 냄새 때문에 송강호는 이선균의 가슴에 칼을 꽂고 지하실로 숨어들어가 인생의 끝장을 맛본다. 

송강호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가난한 사람의 체취이다. 영화 속 이선균은 송강호가 근처에 있을 때마다 “아주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행주 삶을 때 나는 냄새”, “지하철을 타면 나는 냄새”가 난다고 중얼댄다. 썩 맘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충분히 감지된다. 

봉 감독은 ‘기생충’을 소개하면서 “냄새라는 것이 사실 사람의, 그 당시의 상황이나 형편이나 처지가 드러나지 않나.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면 몸에서 땀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지켜야할 우리의 어떤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지 않나. 그 인간에 대한 예의가 붕괴되는 어떤 순간 같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송강호는 이선균이 냄새가 난다고 코를 잡고 찡그리는 얼굴을 보는 순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마치 불붙은 휘발유 통처럼 폭발해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얘기다. 

송강호의 냄새는 노인의 냄새하고는 다르다. 반지하방의 습한 공기를 머금은 옷이나 인간의 몸에 밴 냄새와 노인의 체취가 같을 수는 없다. ‘부자 노인’에게선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도 연구해볼 점이다. 

기자 역시 나이가 들면서 노인의 체취가 나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했지만 냄새를 지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 냄새에서 해방됐다. 로션을 발라보라는 아내의 말대로 핸드크림, 바디로션 등 이것저것을 온몸에 바르고 나서부터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평생 로션을 바르지 않았던 남자가 몸에 끈적끈적한 화학제품을 바르는 일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일설에는 여성과 잠자리를 하지 않으면 냄새가 난다고 한다. 일본의 온천은 남녀의 냄새를 희석시키려고 남탕과 여탕을 번갈아 바꿔 쓴다는 얘기도 있다. 기자의 경험상 잠자리와 냄새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 

1960년대 강신재라는 여류작가가 쓴 단편소설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가 젊은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유행어가 된 적이 있다. 로션으로 냄새를 잡았다는 기자의 경험이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냄새로 고민하는 노인에게는 한 번 권하고 싶은 방법 중 하나다. 새해부터 비누 냄새는 나지 않더라도 노인 냄새는 피우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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