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 석기시대 돌도끼와 최신 휴대폰에는 어떤 공통점이?
국립중앙박물관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 석기시대 돌도끼와 최신 휴대폰에는 어떤 공통점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1.31 15:01
  • 호수 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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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전시하는 기존 디자인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1만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품을 감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전시하는 기존 디자인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는 1만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사진은 한 관람객이 전시품을 감상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핀란드 고고학·민속 유물을 비롯 현대 산업디자인·영상 등 140여건

1m 넘는 빵 집게, 빗살무늬토기 등 눈길… 오로라 체험 공간도 마련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인류가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을 이어가던 석기시대에서는 돌도끼가 가장 유용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매일 새로운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인들의 필수 도구는 무엇일까. 아마도 늘 소지할 수 있는 휴대폰일 것이다. 지난 1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핀란드 루오베시에서 출토된 석기시대의 ‘양날 도끼’와 노키아가 1996년에 생산한 휴대폰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물건은 묘하게 닮았다. 손에 쥐기 좋고, 손안에서 활용하기 편하게 제작된 당대 최고의 ‘생존 도구’라는 점에서 말이다.

북유럽 핀란드의 과거 유물부터 동시대 첨단제품까지 인간과 도구, 디자인의 관계를 고찰해보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4월 5일까지 진행되는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은 디자인전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최근 잇달아 열리는 디자인전과는 다르다. 명품이나 유명 디자이너 작품 등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그 디자인을 낳은 구조와 뿌리, 1만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는데 중점을 둔다. 

전시 구성 역시 시간순으로 하지 않았다. ‘인간은 사물을 만들고, 사물은 인간을 만든다’, ‘물질은 살아 움직인다’, ‘사물의 생태학’, ‘원형에서 유형까지’, ‘초자연에서 탈자연으로’, ‘사물들의 네트워크’ 등 6가지 소주제로 나눠 인간과 물질, 그리고 사물과 기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전시에서는 핀란드의 갖가지 고고학·민속 유물과 현대 산업디자인·사진·영상 등 140여건, 한국의 고고·민속 유물 20여건 등 160여점을 선보인다. 석기시대 돌도끼와 21세기 노키아 휴대폰을 함께 전시하며 시대변화에 따른 생존도구로서의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핀란드의 문화와 디자인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전시장 곳곳에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청동검, 은제 허리띠 등을 곳곳에 배치해둔 점도 이색적이다. 가령 인간의 정착과 유목 사이의 선택에서 생겨난 유물로 해석되는 핀란드의 빗살무늬토기 옆에 우리의 빗살무늬토기를 배치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와 추운나라인 핀란드가 생활환경은 다르지만 생존을 위해 닮은 발전 과정을 겪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문화적 배경 혹은 생태적 환경이 달라,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은 사물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이중 핀란드인들의 고유한 식문화에서 탄생한 사물인 1.2m 길이의 목재 집게는 가위처럼 생긴 익숙한 형상임에도 오로지 빵을 집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도구라는 점에서 인상 깊다. 일부 농촌에서는 아직도 일 년에 두 번 빵을 구워서 천장에 받침대를 놓고 빵을 저장해 두는데, 빵을 올리고 내리는 용도로 이 빵 집게를 사용한다고 한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대표작도 선보인다. 이중 눈여겨볼 작품은 핀란드 가구 회사 아르텍(Artek)의 유아용 식탁 의자인 벤 아프 슐텐(Ben af Schulten)이다. 1965년 디자인한 의자로, 등받이의 곡률이 어린이의 등을 안정적으로 감쌀 수 있게 인체 공학적으로 고안되었다. 앉았을 때 다리의 각도 역시 고려한 디자인으로 여전히 생산되고 핀란드 가정에서 사랑받는 제품 중 하나이다. 전시에는 이 의자 옆에 핀란드의 한 가정에서 어린이를 위해 만든 유아용 그네 의자를 함께 소개한다. 아이가 다리를 벌리고 앉을 수 있는 구조와 몸을 숙여 기대었을 때 안정적일 수 있게 목재를 구부려 곡률을 준 형태의 그네 의자다. 아이의 신체적 구조를 고려하고 애정을 담아 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물건이다. 벤 아프 슐텐과 그네 의자는 핀란드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 정신을 잘 보여준다.

직물과 가방·액세서리 브랜드로 이름난 마리메코를 세운 디자이너 안티 누르메스니에미와 부오코 누르메스니에미 부부의 작품도 나왔다. 유리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 이탈라, 의자와 그릇 등 생활용품, 삼성전자와 애플에 앞서 세계 휴대전화 시장 선두를 지켰던 노키아의 제품, 가위 손잡이를 쇠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꿔 현대 가위의 새 원형을 선보인 피스키스의 가위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또한 곳곳에는 원목으로 만든 사우나, 시벨리우스 오디오 부스, 오로라 감상실 등 핀란드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전시장 끝에 있는 오로라 감상실에서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밤하늘에 펼쳐지는 황홀하고 아름다운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 

서울 전시 이후에는 국립김해박물관(4월 21일~8월 9일)과 국립청주박물관(8월 25일~ 10월 4일)에서의 순회전이 예정돼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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