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새해 인사, 축복의 말을 합시다
[백세시대 / 금요칼럼] 새해 인사, 축복의 말을 합시다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2.07 14:57
  • 호수 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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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구만 쳐주는 대화장치에도

상담 받는 환자들은 큰 위로를 받아

좋은 뜻으로라도 싫은 소리보단

진심을 담은 축복의 말이 

상대방에 더 바람직한 효과 불러

새해가 되면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고 덕담을 나눈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덕담인데 듣는 사람의 마음엔 상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취업, 결혼, 승진 같은 이야기들이다. 올해는 명절에 이런 종류의 말을 했다간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10만원, 20만원 액수가 올라가다가 올해 나이가 몇이냐, 시집 언제 가냐, 애 하나 더 낳지 않느냐고 물었다간 백지 수표를 써야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과연 어른들은 젊은이들 앞에서 입을 꽉 다물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1960년대 말 컴퓨터 공학 교수인 요제프 바이첸바움은 의사들이 환자와 대화하는 것을 보고 간단한 대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엘리자(Eliza)’. 일종의 상담 치료 로봇 같은 것이었다. 그 역할은 단지 환자들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계속 말을 걸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텍스트만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고작이었지만, 환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눈물까지 흘리며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환자들의 반응에 당황한 요제프는 ‘엘리자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고 알려줬지만, 환자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 엘리자를 찾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들에게는 그저 교감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통상 의사들이 하는 일, 즉 아픈 원인이 무엇이고 병이 생기기까지 잘못된 습관을 탓하는 등의 말은 틀린 것은 아니라 해도 따뜻한 감성의 소통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요제프 스스로 중단하고 말았다. 인간의 대화는 기계적인 단어의 나열만으로는 교감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즉 거짓된 교감에 잠시 의지하는 것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엘리자를 처음 만난 환자들의 반응과 엘리자를 개발한 요제프의 개발 중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인간은 아주 단순한 맞장구라도 교감을 나눌 수 있다면 상당한 반응을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교감의 본질은 따뜻한 감성이 배여 있는 축복과 배려라는 인간의 고유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묶는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인간의 소통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말은 축복의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인 이상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교감하는 축복의 말을 잘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랠프 가복의 저서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를 보면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축복의 말이 자녀의 정서와 자존감에 좋다는 것이다. 내가 그 책을 선물 받았을 때는 딸아이를 임신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그 책의 제목만 보고도 상당한 전율을 느꼈다. 하루에 한 번씩 아이에게 축복의 말을 해준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번 매를 들어라’라고 했다면 오히려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상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싫은 소리를 하고 다그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의 언어, 축복의 말보다 더 큰 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거나 노력해도 한계에 부딪혀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잔소리는 더욱 주눅이 들게 할 가능성이 크다.

라틴어로 ‘축복’은 ‘베네딕투레(benedicture)’라고 한다. ‘베네’는 ‘좋다’는 말이고 ‘딕투레’는 ‘말하기’라는 뜻이다. 즉 좋은 일을 발표하고 서로 확인한다는 의미이다. 축복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말이다. 축복의 말을 듣는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끼며 자존감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꽃도 자꾸만 예쁘다고 해주면 더 잘 자란다. 하물며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이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새해 인사가 오고 가는 때이다. 상대가 마음 아파 할 이야기는 접어두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이나 어휘를 사용한 축복의 말이면 충분하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축복해주는 말하기, 진정으로 상대방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인사가 오고 가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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