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30년 지기’ 소원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
[백세시대 / 세상읽기] ‘30년 지기’ 소원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2.14 14:59
  • 호수 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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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방송을 보면 뉴스가 딱 두 개다. 하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환폐렴), 다른 하나는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사건이다. 건강을 되찾은 이도 보도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세는 꺾이는 듯한 추세이나 후자는 추미애 법무장관의 연이은 돌출 발언으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기자는 지난해 ‘조국 사태’를 계기로 판단력에 어지럼증이 생겼다. 옳고 그름, 사실 거짓, 공정 불공정의 차이를 구분하는 잣대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특히 울산시장선거에 청와대가 개입을 했는가라는 점에서도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린다.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피해자라고 나선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자세는 당연히 당당하고 단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건의 피의자 쪽인 전 청와대 비서관들-특히 임종석 전 청와대비서실장-이나 당사자인 송철호 울산시장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또는 미소를 띠며 (검찰이나 김기현 측 주장이)억측이며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명료하다. 청와대 전직 비서진의 개입으로 2018년 지방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가 이뤄졌고 관련 언론보도가 김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결국 낙선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비서진이 송철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위해 경찰 수사를 지시·독려하고 선거기획에 참여하고 당내 경쟁후보의 경선 포기를 종용한 것이 공직선거법 등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의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반 헌법적 행위다.

송 시장은 잘 알려진 바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다.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정무수석실 등 비서실 직제 조직 7곳이 송 시장 당선을 위해 동원됐다. 2017년 9월, 송 시장이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김기현 관련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달라는 취지로 대화하며 수사를 청탁했다. 이외에도 한병도 전 정무수석이 송 시장 경쟁자에게 다른 자리를 권유하는 등 청와대 차원에서 송 시장을 밀었다고 의심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수십 차례 등장한다. 검찰은 특히 공소장 첫머리에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썼다. 공소장 곳곳에는 송철호 울산시장과 대통령과의 친분을 드러내고 대통령의 이름을 적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4월 총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선거 이후로 수사와 재판을 연기했지만 추미애 장관의 상식 밖의 행동으로 핫뉴스가 되고 있다. 추 장관은 노무현 정부 이후 관행이 된 공소장 공개에 대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며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사건을 어떻게 인지해야 하는가. 대통령은 공소장에 적시된 대로 이 사건에 연루됐는가, 아니면 언론의 공소장 공개로 인한 피해자인가. 국민은 헷갈린다. 

기자는 기사를 쓸 때 기사 내용의 적합·합리·정당성 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가-교수나 변호사-의 조언을 듣는다. 그들의 발언이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신뢰성과 사회적 지위에 따른 보편타당성을 갖추고 있어서다.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의 실체를 살피는데 그들의 입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2월 10일, “문 대통령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것이 확인될 경우에는 대통령이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직권남용 및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해당함은 물론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일에는 전국 377개 대학 교수 6094명이 참여하는 ‘사회 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침묵은 이해할 수 없다. 대통령은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교수, 변호사들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입장을 촉구하는 것을 보면 이 사건에 청와대가 깊숙이 관여한 것만은 사실인가 보다. 선거에서 8번 떨어진 ‘30년 지기’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돕는 게 또 인지상정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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