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전, 근대화의 상징으로 70년간 달렸던 전차의 역사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전차’ 전, 근대화의 상징으로 70년간 달렸던 전차의 역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2.21 14:41
  • 호수 7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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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서는 70년간 서울을 누볐던 전차와 관련된 다양한 귀중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을 달렸던 전차.
전시에서는 70년간 서울을 누볐던 전차와 관련된 다양한 귀중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경성을 달렸던 전차.

1899년 서울서 첫 개통… 일제강점기 남촌‧북촌 노선등 16개 확대

개통 직후 인명사고로 전차가 불태워지기도… 희귀자료도 공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최근 대전과 부산 등 지역에서 트램 노선 건설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트램은 일반도로 위에 부설한 레일을 주행하는 전차를 말한다. 구한말 서울에 최초 도입됐고 부산에는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가설됐다. 시민들의 중요 교통수단이 됐지만 사람들이 선로로 그냥 걸어 들어가는 바람에 변을 당하는 등 탈도 많았다. 이렇게 서울 시내를 70년간 달리던 전차는 1969년, 부산에선 1968년 운행을 멈췄다. 

버스, 지하철에 밀려나 사라졌다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는 전차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3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서울의 전차’ 전에서는 1899년 서울에 전차가 개통됐을 때부터 1968년 전차가 멈춰 설 때까지 70년간 서울 전차의 역사를 소개한다. 전차로 인해 바뀌었던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활상도 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근대로의 질주’, ‘궤도와 바퀴는 사람들의 발이 되고’, ‘70년간 운행의 종료’ 등 3부로 구성돼 있다.

전차는 공중에 설치된 전선으로부터 집전장치를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 운행된다. 초기에는 전차차량이 나무로도 제작됐고 지붕에 트롤리 폴(전차 지붕 위에서 전기를 통하게 하는 쇠막대기)이 설치돼 운전사가 직접 제어기를 통해 모터를 제어했다. 브레이크 역시 수동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차의 부품들과 함께 전차의 작동원리를 상세히 소개한다.

고종황제는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전깃불을 들여오고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근대화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전시에서는 이에 대한 사료 기록 및 한성전기의 미국 파트너였던 보스트워크가 소장했던 당시 사진첩 외 여러 자료들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한성에 전차가 개통됐을 당시 전차 시간표, 노선표, 전차 표 등과, 1890년 초부터 1904년까지, 그리고 1920년부터 1922년까지의 희귀한 서울 사진들도 살펴볼 수 있다.

1900년 전차 노선도와 요금표의 모습.
1960년대 전차 광고물.

신문물을 들여와 나라를 발전시키고 백성을 편하게 하려는 고종황제의 뜻에 따라 도입됐지만 모든 사람들이 전차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개통 10일째 되는 날에 5살 아이가 전차에 치어 죽은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성난 민중들이 전차에 불을 지르는 등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는 전시되어 있는 관련 사건사고가 담긴 기사와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차에서는 차비를 내면 누구라도 1등석에 탈 수 있기에 반상 및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공간의 구별이 무너지며 당시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4개였던 전차 노선은 한일병합 후 그 수가 늘어나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는 그 노선이 16개가 된다. 대부분이 남촌과 북촌 노선 위주였는데 남촌 노선은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었고, 북촌 노선은 조선총독부에 출퇴근하거나 관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형성되었다. 즉, 철저히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노선을 늘렸고 그 과정에서 경성의 성문과 성벽은 훼손됐다.

경성의 행정구역이 계속 확장되며 교외 개발이 이어지자 전차 노선도 그에 맞춰 가설됐다. 교외로의 노선 부설은 시민들의 생활권을 확대했는데, 승객과 물자 수송이 주 임무였던 전차는 경성의 오물 처리까지 맡으며 도시와 시민들의 생활에 더 깊이 자리 잡았다. 전시에서는 당시 전차가 함께 했던 시민들의 일상과 생활이 담긴 문학 작품과 유행가 등을 통해 그 흔적을 쫓는다.

광복 이후 서울의 인구가 급증하며 만원 전차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극심해졌다. 더 많은 노선의 부설로 시민들이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 이점도 있었고 여전히 전차는 당시 대표적인 서울의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점차 자동차 위주로 개편되는 도로 상황에 전차는 점점 설 곳을 잃게 된다.

그러다 버스를 중심으로 한 교통 시스템의 변화로 전차를 이용하는 승객 수는 급속히 감소한다. 결국 서울시가 세종로 지하도 건설을 위해 한국전력으로부터 전차 사업을 인수한 후, 전차 운행을 일부 중단시키면서 전차 철거 수순을 밟는다. 그리고 1968년 11월 29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근대화의 시작을 대표했던 전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또 서울역사박물관 외부에는 1960년대 전차 내부에 부착된 광고들을 복제해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전차 381호(등록문화재 제467호)에 재현했다. 전차 381호는 1930년대에 제작되어 1968년 11월까지 약 38년간 서울 시내를 운행했다. 현재 남아있는 전차 두 대 중 하나이며 다른 하나인 전차 363호는 국립서울과학관에 보존돼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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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보 2020-02-26 10:07:10
그러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