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바이러스와 식물/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바이러스와 식물/오경아
  • 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0.03.06 15:07
  • 호수 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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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식물은 바이러스의 공격 받으면

옆 식물이 대비할 수 있도록 

특정 가스 분출해 경보

인류도 공존 위해 서로 챙겨야

미생물과의 전쟁서 이길 수 있어

한 숟가락의 흙 속에는 우주의 별만큼 많은 생명체가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우리는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이 미생물이 얼마나, 어떤 종류가 이 지구에서 활동하는지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한다고 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45억 년 역사 속에 실은 이 단세포의 미생물이 먼저 출현했고, 이후 30억 년쯤 되어 식물이 나타난다. 인간,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는 기껏해야 3600만 년 전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니 이 지구에서 우리보다 일찍 삶을 시작했고, 우리보다 더 진화됐을 미생물이 우리와 싸움을 시작한다면 이건 좀 매우 힘겹고 결코 간단하게 승리를 점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잘 아는 세 종류의 미생물이 있다. 균과 박테리아. 그리고 바이러스. 그런데 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더 작고, 그저 단백질과 최소의 핵으로만 구성된 생명체다. 균도 박테리아도 질병을 일으키지만 상당수는 지구의 생명체와 공생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대부분 질병을 일으킨다. 게다가 균과 박테리아와는 달리 스스로 삶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세포 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 세포가 죽을 때까지 떠나질 않고 숙주의 생명을 공격하는 특징이 있다. 

이 바이러스는 동물만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도 바이러스의 공격은 치명적이다. 식물의 멸종에는 기후의 변화, 자연재해 등의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 이 바이러스의 공격도 상당하다. 물론 그렇다고 식물이 바이러스에게 속절없이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30억 년이 넘는 역사 동안 식물 스스로 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방법을 만들어냈고, 이게 아직도 식물이 전멸하지 않고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있는 중일까? 식물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으면 특정 가스를 분출한다. 이 가스가 바람에 날려 옆 식물에 도착하면 주변에 바이러스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그 즉시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일종의 화학물을 만들어 대비를 한다. 맨 처음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식물이 죽어가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시 가스를 분출하는 것은 자신의 종족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서다. 대비할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고, 자신의 삶은 사라져도 종족이 살아 남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은 일 년 내내 풀을 찾아 떠도는 유목 생활 동물들이 있다.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수백만 마리의 월드  비스트, 얼룩말, 가젤과 임팔라가 함께 움직인다. 얼룩말은 시력이 좋아 멀리 있는 적을 잘 보고, 월드비스트는 후각이 좋아 냄새를 잘 맡고, 가젤과 임팔라는 귀가 잘 발달해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한다. 모든 것이 뛰어날 수 없는 이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서로를 지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며 세렝게티의 삶을 이어가는 셈이다. 

사실 우리 인간 종족도 다르지 않다. 무엇 하나 뛰어나지 않지만 우리가 가장 늦게 출현하여 지구의 최강 생명체가 된 이유는 딱 하나다. 그 어떤 지구상의 생명체보다 종족의 안위를 서로 걱정해주고, 지켜주고, 좀 더 나은 생존력을 위해 후손을 교육시킨다. 그 서로의 지킴이 지금의 인류 문명을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역병이 창궐하니 우리 본연의 본성을 잊고 타인을 증오하고, 자신만을 지키려고만 애쓰며, 마스크 한 장도 공유를 못 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정 우리가 이 바이러스에 지는 건 이런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을 잃어버리고 결국 서로를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아닐지. 식물이 혼신을 힘을 다해 위험을 알리듯, 누군가는 알려야 하고, 누군가는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누군가는 지켜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우리가 함께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챙겨야 이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진정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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