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만화가 이정문 화백 “당시 귀하던 TV와 무전기를 연결시키니 스마트폰이 떠올랐다”
원로만화가 이정문 화백 “당시 귀하던 TV와 무전기를 연결시키니 스마트폰이 떠올랐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3.13 11:12
  • 호수 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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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문 화백이 국영기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린 ‘앞으로 50년 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뒤 로봇 모형은 이 화백의 SF만화 주인공 ‘캉타우’.
이정문 화백이 국영기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린 ‘앞으로 50년 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 뒤 로봇 모형은 이 화백의 SF만화 주인공 ‘캉타우’.

35년 후 미래 생활 정확히 예측 만화 그려…무빙워크·전기자동차 등

요즘도 손·머리 굳을까 매일 5시간씩 그려…철인 ‘캉타우’ 복간 준비

[백세시대=오현주기자] ‘백세시대’ 신문에 ‘심술통’ 만화를 그리는 이정문(79) 화백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화백이 군 제대 직후인 1965년에 그린 만화 한 장 덕분이다.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 아래 35년 후의 모습을 상상한 그림이 현재의 생활을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는 놀랍게도 오늘날 상용화가 됐거나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문명의 이기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소형TV전화기를 손에 들고 ‘빨리 와’라고 말하는 소년, 전기자동차를 운전하며 ‘공해가 없지요’라고 만족해하는 운전자, ‘움직이는 도로’ 위에 가만히 서 있는 두 형제, 빗자루를 들고 있는 로봇 등.

이 화백은 “만화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정부, 기업체에서 강연 요청도 들어오고 바빠졌다”며 “당시 그린 것들은 주변에서 보던 생활용품과 상상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초 경기도 이천의 전원주택을 작업실로 쓰고 있는 이 화백을 만나 당시 그림 제작 과정과 미래의 일상생활을 들었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스마트폰, 무빙워크, 원격진료 등을 그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정문 화백이 1965년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스마트폰, 무빙워크, 원격진료 등을 그려 화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미래 상상도’를 그리게 됐나.

“어린이잡지에서 미래의 생활상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린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지인이 인터넷에 그림이 돌고 있다고 얘기해줘 내 그림인 걸 확인했다.”

-유사 스마트폰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

“TV가 귀했던 시절 이웃집 창문을 통해 레슬링 중계방송이 떠들썩하게 들렸다. 그게 정말 보고 싶었다. 그런 갈망에다가 당시 군인들이 길거리에서 무전기로 교신하는 장면을 붙여 넣은 것이다.”

-움직이는 도로도 놀라운 발상이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6·25를 겪었다. 탱크의 무한궤도(캐터필러)를 보고 저걸 쫙 펴놓으면 걷는 수고를 덜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집에서 진료 받는 장면도 나온다.

“의사가 집에 있는 환자에게 ‘너 어디 아프니’ 하고 물으면 환자가 대답하고…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그런 식으로 학교 가기 싫은 아이가 집에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공상을 한 것이다.” 

그림에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달나라로 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 화백은 “그때 소련의 가가린이 우주를 다녀왔다는 뉴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플래시의 건전지를 보고 전기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고. 

“지금까지 100여회 강연을 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화장품 회사에서 미래의 미(美)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성들이 화장할 때 눈·입술·볼 등 부위별로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나. 그런 기능을 하나의 팩에 집어넣어 짧은 시간 얼굴에 붙이면 화장이 끝나는 제품을 개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국내 최대 가전제품회사의 기술연구소에서는 이런 내용의 강연도 했다. “가전제품 부문에서는 타 경쟁사를 앞섰지만 스마트폰에서는 항상 2인자인 회사다. 그래서 제가 소형TV전화기를 생각해낸 과정을 소개하면서 스마트폰의 새 모델이 되는 제품을 만들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화백은 10년 전인 2010년, ‘2041년 미래의 생활’을 예측하는 만화를 선보였다. 이 그림에도 현재로선 실현 불가능한 상상이 지면 가득 꼬물거린다. 이 화백은 “2010년은 제가 만화가로서 데뷔한지 50주년이 되던 해였고 2041년은 제가 100세가 되는 해”라며 “스마트폰에 수많은 앱을 설치해 광범위한 분야로 기능을 확장한다는 상상을 해봤는데 벌써 그게 현실화된 걸 보면 문명의 진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41년 그림에는 에너지원의 80%가 태양열인 시대로 중동의 석유업자들이 석유를 사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재밌는 장면이 보인다. 또 남태평양의 거대한 섬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그림도 있다. 이 화백은 “공해상의 섬은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라는데 한국인이 공해상에서 거대한 섬을 발견해 우리 국토가 된다는 얘기”라며 “석유도 대체 에너지에 밀리고 있지 않느냐”며 웃었다.

-처녀귀신의 정체도 밝혀진다고 했다.

“사진기술이 고도로 발달해 유령의 존재조차도 영상촬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천당과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증명할 날이 올 것이다.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부정한다면 (1965년에 그린 그림은)나올 수가 없다”

이정문 화백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직전 한국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소년가장’으로 숱한 시련을 견뎌냈다. 경희대 상학과 1학년 때 잡지 ‘아리랑’ 만화 공모전에 뽑혀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권영섭·신문수·김박 등과 함께 한국원로만화가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만화의 소재는 어디서 얻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구두닦이, 신문팔이를 하며 외할머니, 어머니까지 6식구를 먹여 살렸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등잔불을 켜놓고 그림을 그렸다. 어디 배울 데도 없었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인왕산 아래서 살았는데 밤하늘에 은하수가 가득했다. 그걸 쳐다보며 온갖 상상을 했었다. 신문을 스크랩하고 과학뉴스도 놓치지 않았다. 제 그림이 ‘심술통’을 앞세운 명랑만화와 철인 ‘캉타우’를 내세운 SF만화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모두가 이때의 상상력과 신문·방송 스크랩에서 나온 것들이다.”

-‘심술통’의 탄생 배경은.

“새벽에 일어나 구두통을 둘러메고 동네 골목을 다니며 출근 직전 사람들 구두를 닦았다. 서툰 솜씨에 손님이 구두통을 차면서 ‘시로도(초보) 아닌가’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고 좋은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일종의 갑질인 셈이다. 심술통은 턱에 ‘심술’을 담아 크게 부푼 모양을 하고 있다. 부정의 ‘심술’이 아니라 갑질에 대한 반감, 응징 등 정의의 ‘심술’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일 수 있다. ‘백세시대’ 신문의 심술통도 불효하고 버릇없는 일부 젊은 층을 훈계하고 야단치는 바른 캐릭터이다.”

-과학만화를 복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의 마징가 제트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혼을 빼앗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는 걸 보고 우리만의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손오공에서 힌트를 얻어 알약을 본뜬 둥그런 몸통에 조선시대의 철퇴를 한손에 들고 있는 철인 ‘캉타우’를 만들었다. 지구를 점령하러온 외계인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만화 ‘캉타우 1·2권’(1976년)을 발간해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 캉타우를 좋아하는 분들이 당시 만화를 복간한다는 반가운 얘기다.”

-한국원로만화가협회는 잘 운영되는지.

“대전 현충원에 우리나라 만화를 대표하는 고바우 김성환(1932~ 2019)과 길창덕(1930~2010) 두 분이 영면하고 있다. 지난 2월에 있은 고바우 화백의 안장식에 회원들이 참석해 조사도 읽고 묵념도 했다. 고바우는 특히 우리나라 만화가의 위상을 높인 훌륭한 분이다.”

40년 가까이 새마을중앙회 기관지에 만화연재를 하고 있는 이정문 화백은 ‘미래 상상도’를 계기로 새로운 명성과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 그렇지만 그의 오늘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여든 가까운 나이에도 손과 머리가 굳을까바 매일 5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청탁을 받아서가 아니고 그려놓는 것이다.  

이 화백은 인터뷰 말미에 “최근에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데 수수료도 없고 편하다”며 “노인이 현대를 살아가려면 ‘골치 아프다’ ‘귀찮다’고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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