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기 전·후, 가족과 충분히 교류해야”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기 전·후, 가족과 충분히 교류해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3.20 13:38
  • 호수 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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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회장으로 있는 90세 모친, 다니던 병원에서 우연히 알고 작성

의향서 상담·작성 돕는 일, 노인일자리와 연계해 노인회서 하면 좋아

[백세시대=오현주기자] “어르신들께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전·후로 가족과 충분히 교류하시기 바란다.”

지난 1월 임명된 김명희(60)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이 노인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김 원장은 “가족과 상의하지 않고 의향서를 작성했을 때 가족으로부터 존중 받지 못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초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서 김 원장을 만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시 주의할 점, 생명윤리를 지키려고 기울인 노력 등에 대해 들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이 향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됐을 때를 대비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미리 국가 전산망에 기록해두는 문서다. 최근에 법이 바뀌어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세 가지가 추가 됐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지난 2월 말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60만4563명이 썼고 연명의료계획서는 3만9050명이 썼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사가 쓰는 것이다. 김명희 원장은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로 연세대에서 의료법윤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건수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어르신들이 움직이지 않아 확연히 줄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한주에 1만명씩 들어왔지만 지금은 2000명 선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기 전에 주의할 점을 알려 달라.

“일단은 임종기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결정이므로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상담사의 설명을 잘 듣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물어보고 작성해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쓰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이후에는 가족이나 주변 지인에게 (작성 사실을)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왜 그런가.

“우리 문화가 자식의 도리를 중요시하고 부모를 모시는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면이 있다. 자식들이 나중에 작성 사실을 알았을 때 부모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우려한다. 그런 경우 부모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 원장은 “존엄하고 편안한 죽음이 되려면 죽음에 대한 준비를 가족과 해야 한다”며 “생전에 나는 이렇게 죽고 싶다, 가망이 없을 때 무리하게 이것저것 해가면서 고통 받고 싶지 않아 작성했으니 만약 의식이 없다면 의향서에 따라달라고 가족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명 결정뿐만 아니라 유산도 잘 정리하고, 가족과 인간관계에서도 화해와 용서, 이해를 구하고 삶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웰다잉의 한 부분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번복하는 경우도 있나.

“드물게 있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즉흥적으로 썼다가 나중에 생각해보고 신중하지 않았다는 걸 느끼고 철회하는 경우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지정된 기관에 직접 가서 쓰는 건가.

“그렇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지정한 일반병원, 공공병원, 건강보험공단 지사, 보건소 등이다.”

-대한노인회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을 수 있을까.

“아무 단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등록요건을 법으로 정해놓았다. 노인회가 지정 기관이 되길 원한다면 우선 신청서류를 제출하고 우리가 심사해 요건이 되면 지정해드린다. 의료기관도 마찬가지다.”

-보건소도 다 받지를 않는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전국의 256개 보건소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는 곳은 30개에 불과하다.”

김 원장은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노인회가 홍보와 작성에 참여하길 기대한다”며 “제천보건소의 경우 노인일자리와 연계해 교사 출신의 어르신들이 보건소에 나와 상담도 해주고 작성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물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김 원장의 모친(90세)은 경기도 부천 중동의 아파트경로당 회장으로 역시 의향서를 썼다. 재밌는 점은 딸의 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이란 점이다. 모친은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에서 우연히 홍보책자를 통해 알게 됐고 경로당 회원들과 택시를 타고 원미구보건소에 들러 작성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제가 이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거 쓰실래요?’ 하고 못 여쭙겠더라. 물론 작성 전에 자세히 설명은 드렸다”며 웃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생명윤리’는 무슨 의미인가.

“윤리는 무리 倫(윤)에 이치 理(이)를 쓴다. 한 무리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서로 이치가 있어야 질서가 잡혀 잘 살아간다는 의미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생명에 다른 생명체가 개입하는 일이 생겼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난자와 정자가 몸속에서 수정이 이뤄졌지만 시험관아기는 밖에서 되고 있고 한 사람의 장기가 떼어져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생명에 인위적인 개입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하는 게 생명윤리이다. 윤리는 고리타분한 게 아니라 함께 모여 질서를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다.”

김 원장은 “인간은 윤리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에 이만큼 발달했다”며 “코로나19에 좋은 치료약이 나와도 서로가 전염시키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윤리적으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무얼 하는 곳인가.

“새로운 과학과 생명에 관련한 연구를 할 때 윤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정부의  제도와 정책 수립에 기본이 되는 자료를 조사·연구해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직원 대부분이 의사들인가.

“우리는 생명과 관련된 윤리적인 것을 제도화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저 같은 의사도 있고 생명공학자도 있고 법, 철학을 전공한 이도 있다.”

-왜 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이곳에 몸 담았나.

“누군가는 헌혈을 하고 어디선가는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남에게 떼어준다. 의학의 발전에는 과학 지식도 중요하지만 희생(헌혈), 기증(신체) 등의 행위도 소중하다고 인식했다. 그런 일들이 윤리적으로 보호 받고 우리 사회가 그에 대해 기본적인 도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원장 취임 당시 일부 언론이 ‘싸움꾼’이라는 표현을 썼다. 

“소중한 헌혈이 잘못 사용되는 문제점들을 국회에도 알리고 청와대에도 알리고 좀 시끄럽게 그랬다. 황우석 사태 때도 난자채취를 못하도록 그를 많이 괴롭혔다(웃음).”

김명희 원장은 인터뷰 끝에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어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을 수 있다면 치료를 다 받아야 하며 그게 바로 생명윤리”라고 말했다. 이어 “연명의료가 됐던 웰다잉이든 그게 존엄하고 자발적인 자기 결정이 되기 위해선 노년기의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책임을 져주어야 한다. 병원비라든지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결정해야 그게 진정한 의미의 자발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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