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숲 산책 2] '무기여 잘 있거라' 1차 대전 중 사랑에 빠진 연인의 운명 다룬 걸작
[고전의 숲 산책 2] '무기여 잘 있거라' 1차 대전 중 사랑에 빠진 연인의 운명 다룬 걸작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3.20 15:37
  • 호수 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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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 포스터
영화 ‘무기여 잘 있거라’ 포스터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헤밍웨이가 1929년 발표한 초기 대표작

미국인 헨리 중위와 영국인 캐서린의 전쟁 속 비극적 사랑 이야기

무기여 잘 있거라
무기여 잘 있거라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2월 개봉한 영화 ‘1917’은 그간 2차 세계대전보다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통한 전쟁의 잔혹함을 그리며 호평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한 컷에 찍은 것처럼 연출해 전쟁의 공포를 긴장감 넘치게 연출했고 전쟁을 다룬 새로운 고전이라는 평까지 받고 있다. 이 작품의 인기와 함께 덩달아 주목을 받는 작품이 있다. 마찬가지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이다.

1929년 발표된 이 작품은 군의관 프레드릭 헨리 중위와 간호사 캐서린 버클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탈리아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미국 청년 헨리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 전선에 구급차 부대의 장교로서 이탈리아군에 합류한다. 

연합군과 맞서는 오스트리아군의 공격이 개시되기 직전, 헨리는 휴가를 마치고 전선으로 복귀한다. 이때 친구인 이탈리아군의 리날디 중위가 영국의 종군 간호사인 캐서린 버클리를 소개해준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또 약혼자를 잃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에서 사랑으로 차츰 발전해 나간다. 그러다 헨리가 다리에 중상을 입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병원으로 후송됐고 마침 캐서린도 그곳으로 이동해 온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중위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던 캐서린은 비가 내리는 어느 날 둘 중 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언을 하면서 자신이 임신 3개월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회복된 헨리는 다시 전선으로 파견되고 두 사람은 가슴 아픈 이별을 한다.

독일로부터 지원군이 도착하자 오스트리아군은 기세가 등등해졌고 전세가 뒤집힌다.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이 대패해 퇴각하던 중 헨리는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진 그는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캐서린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캐서린은 동료 간호사와 함께 스트레사 지역으로 휴가를 떠나 있었다.

헨리는 즉시 스트레사로 향했고 우여곡절 끝에 캐서린을 찾아낸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숫가의 호화로운 방에 묶으며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랑을 불태운다. 행복도 잠시 두 사람은 헨리를 탈영 혐의로 체포하기 위해 헌병이 올 것이라는 정보를 받고 스위스로 건너가 레만호의 기슭에 있는 몽트뢰에 작은 집을 마련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갈 것 같았지만 난산으로 제왕절개를 하게 된 캐서린이 과다 출혈로 죽고 아기마저 사산된다. 침대에 누운 캐서린의 시신에 이별을 고한 헨리가 호텔을 나서자 캐서린의 예언대로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헤밍웨이가 열아홉 나이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무기여 잘 있거라’는 세계 문학사에서 대표적인 전쟁소설로 꼽힌다. 그만큼 전장과 후방의 대조적인 상황, 전쟁에 임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각 등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전쟁에 대한 냉소와 비판을 작품 곳곳에 짙게 깔아 놓았다. 

미국인이면서 이탈리아 부대에 소속돼 있고, 전투 부대가 아니라 구급차 부대에 소속된 헨리 처음엔 자신이 겪는 전쟁이 “영화 속의 전쟁만큼이나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투가 아닌 식사 중에 포탄을 맞아 부상을 입어 훈장을 받고, 적군이 아닌 겁먹은 아군의 총에 후임병을 잃고, 퇴각 중 아군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으로 헌병에게 붙잡혀 탈영 및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처형될 위기에 놓이는 등의 상황을 통해 논리와 상식을 거부하는 전쟁의 기이한 특성을 극대화해 보여준다.

이처럼 전쟁의 비인간성과 비합리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깔려 있는 동시에 헤밍웨이가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만큼 애잔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 삶에 무심하던 주인공은 비참한 전장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며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의 공허함, 세상에 내던져져 죽음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그래서 더 소중한 사랑, 교감의 가치를 깨닫는다. 

하드보일드 기법(비정하고 냉혹한 문체)에 풍부한 시적 요소를 더해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은 연극, 영화,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지며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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