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청학
[디카시 산책] 청학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20.03.27 14:16
  • 호수 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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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

아직 날개를 얻지 못한 

어린 무희의 군무

 

긴 목으로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아득한 창공이 있어라


이끼는 선태식물이다. 꽃을 만들지 않고 포자를 만들어 자손을 퍼트린다. 흙을 통해 수분을 흡수하지 않고 공기 중의 수분을 이용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3월, 이끼가 포자를 만들어 촉수처럼 길게 밀어 올리고 있다. 더 멀리 자손을 퍼트리기 위한 안간힘. 무릎을 땅에 대고 온 몸을 최대한 구부려야 볼 수 있는 저 아름다운 군무를 누가 하찮다고 할 것인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가꾸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아무리 척박해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제 본분에 충실한 생명들이 이 땅을 한층 더 빛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우리가 함부로 짓밟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몇 만 년을 한결같이 이 땅을 지켜온 저 어린 목숨들이라는 것을 이 봄에 다시 확인한다. 경이롭구나 이끼여.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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