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상대 78개 보험상품 가입 논란…한화생명‧KB생명 “민원 제기돼야”검토
지적장애인 상대 78개 보험상품 가입 논란…한화생명‧KB생명 “민원 제기돼야”검토
  • 최주연 기자
  • 승인 2020.04.0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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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별 대응 ‘천차만별’…“절차상 문제없다” 반면 AIG손해보험 “환급 완료”
관계자 “판단 미숙 가입자 피해 반복될 수 있어”…비대면 보험가입 문제 대두

[백세경제=최주연 기자]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보험 상품 78개를 판매한 보험설계사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돼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절차상 법적 문제가 없고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내부적으로 공론화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보험설계사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지게차 운전기사 A(49)씨에게 5년간 78개의 보험 상품을 판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 연령이 10살 수준인 A씨는 2012년부터 이 설계사를 통해 1억 5천만원 상당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고 한 달에 평균 230만원의 보험료를 월급에서 지출해야 했다.(사진=KBS보도장면 캡처)
한 보험설계사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지게차 운전기사 A(49)씨에게 5년간 78개의 보험 상품을 판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 연령이 10살 수준인 A씨는 2012년부터 이 설계사를 통해 1억 5천만원 상당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고 한 달에 평균 230만원의 보험료를 월급에서 지출해야 했다.(사진=KBS뉴스 캡처)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 보험설계사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지게차 운전기사 A(49)씨에게 5년간 78개의 보험 상품을 판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 연령이 10살 수준인 A씨는 2012년부터 이 설계사를 통해 1억 5천만원 상당의 보험 상품에 가입했고 한 달에 평균 230만원의 보험료를 월급에서 지출해야 했다. A씨가 가입한 보험은 암보험에 입원비, 간병보험, 종신보험은 물론 치아, 당뇨 보험 등에 가입했고 중복되는 보험마저 있었다. 이목구비 보험 상품에도 가입돼 있었는데 이는 A씨가 가입 기억조차 없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A씨는 어마어마한 보험료를 내기 위해 2천만원 대출을 받아야 했고 전세금도 일부 빼야 했다고 한다. 설계사의 보험료 갈취는 A씨의 직장 동료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보험설계사는 보험사 19곳의 상품을 A씨에게 가입시키고 4천900만원의 수당을 받아 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설계사는 보험 가입을 위해 지인이나 딸의 친구 이름을 피보험자로 등록시키기까지 했다. A씨가 보험해약을 요청하면 연락을 피하고 끝까지 요청을 거부했다. 설계사는 A씨가 원하는 보험 가입이었고 장애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도 이 사건과 관련해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보험사는 “절차상 문제가 없고” “민원 접수된 게 없다”면서 소극적인 반응이었다. 문제가 터지고 3년여가 지난 최근까지도 내부적으로 공론화조차 되고 있지 않았다. 한편 일부 보험사는 환급 완료한 곳도 있었다. 본지는 이중 한화생명과 KB생명보험, AIG손해보험의 입장을 들어봤다. 

한화‧KB생명 “환급 검토 될 수 있지만, 아직은…”
AIG손해보험 “ ‘불완전판매’ 인정, 계약취소 후 환급”

한화생명 측은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A씨가 누군지 조회할 수 없어 환급 여부나 진행사항을 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8일 한화생명 관계자는 “절차상에 문제가 없다”면서 “보장성이냐 저축성이냐 상품 성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라고 보기도 애매하다”고 답변했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언더라이팅’으로 고객이 ‘예’라고 할 때 ‘노’라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입자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환급 여부는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언더라이팅’은 보험계약의 청약을 승인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보험가입자의 위험도에 맞는 적정 보험료 및 가입조건을 결정하는 단계를 말한다. 쉽게 말해 보험 가입 전 전화상 구두로 지병 여부나 개인적인 이력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보험사 입장에서는 위험도가 높은 가입자를 사전에 막고 회사 손실을 줄이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언더라이팅 기준을 완화할 경우 보험사는 손해율이 악화할 수 있고 건강한 보험가입자가 높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같은 날 KB생명보험도 한화생명과 다르지 않았다. A씨가 누군지 알 수가 없고 민원이 들어와야 검토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KB생명보험 관계자는 “현재 금감원 민원을 비롯해 이 문제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A씨가 누군지 내부적으로도 알지 못 한다”면서 “환급 가능성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또 지적장애를 앓는 가입자와 관련해서는 “개인정보 고지의무가 고객에게만 있기 때문에 밝히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면서 판단이 미숙한 가입자의 피해가 또 반복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반면 AIG손해보험은 “해당 계약 건들에 대해 ‘불완전판매’임을 인정해 지난 3월에 계약취소 후 환급으로 종결했다”면서 “금감원 민원 접수로 내부적으로 파악 이후에 조치를 취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환급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는 보험사와 설계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보험사도 설계사도 반성하고 돌려주길, 약자가 피해 입는 세상은 없어야 한다” “보험사 어디냐 너무 화난다” “보험사는 다 환불해줘라, 설계사는 구속하고” “진짜 최악질이네요” 라면서 보험사의 전액 환급에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생명보험협회 통계에 따르면 경기불황과 인구감소에도 불구하고 대형 생명보험사의 신계약률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개년 간 한화생명은 +12%, +9.9%, +9.9%를 유지했고, 삼성생명 +9.5%, +8.2%, +8.5%, 흥국생명 +17.8%, +11.3%, +12.5%, 교보생명 +12.1%, +10.2%, +11.0%, KB생명 +31.9%, +25.9%, +21.8% 등 상승 수치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한 보험업계 전문가는 “언더라이팅 기준을 완화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보험 판매를 경쟁하게 두는 것은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며 보험사 간 수익 경쟁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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