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긴급재난지원금, 늑장 부리지 말라”
[백세시대 / 세상읽기] “긴급재난지원금, 늑장 부리지 말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4.10 13:39
  • 호수 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는 소리가 들린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다’였다. 이어 과연 대한민국이 국민에게 돈을 줄까, 줄 수는 있나, 얼마를 언제 주나…그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내 손에 쥐어줘야 믿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는 태어나서 이 시간까지 단 한 번도 국가로부터 ‘공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주구장창 국가에 돈(세금)을 내기만 했다. 따져보면 매달, 매일, 매시간 국가에 돈을 갖다 바치지 않는 날이 없다. 내 젊음을 희생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사는 집에도, 차에도, 오토바이에도 취득세란 명목의 세금을 붙여 공무원을 시켜 받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착한 이 나라 백성은 언짢아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세계 13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 이처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한몫을 했다. 

선거가 다가오자 지원금을 두고 말들이 많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소득 하위 70%, 4인 가구 100만원 지급이라고 했다. 그러다 마음이 급해졌는지 ‘지역,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있도록 보여줄 것’(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고 했다. 가구에 대한 선별 지원에서 전 국민으로 대상을 확대한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지원금에 대한 기대가 점차 희석되는 걸 느낀다. 우선 시기 문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말 그대로 당장 필요해서 써야할 돈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4월 총선 직후 국회에서 추경안이 통과되면 5월 중순 전 지급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면 한 달도 못가 생명을 잃을 판인데 왜 5월로 넘어가자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국회의원 300여명이 여의도 의사당에 집결해 추경안을 통과시키면 될 일이다. 국회의원의 임무가 무엇인가. 국민을 대표해 법을 만들고 국정을 심의하는 것이다. 국민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얘기다. 국민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면 그에 응해 임시국회라도 열어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게 본분 아닌가. 

두 번째는 지원금 액수이다. 여당은 100만원 지급이라 하고 야당은 50만원 즉시 지급(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이라며 잠만 자고나면 서로 다른 액수를 부르고 있다. 선거를 위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 국민에게 100만원씩 주려면 50조원이 든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예산을 다루는데 어떻게 여야가 협의도 무시한 채 무책임하게 서로 다른 소리만 해대는지 한심할 뿐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현금지급 안을 결정하자마자 여당인 공화당과 야당인 민주당이 협상에 들어가 바로 성인 1인당 1200달러(약 150만원)을 준다는 지급계획을 통과시켰다. 

마지막으로 그 많은 예산을 한꺼번에 써버릴 경우 나라가 절단나지 않는가 하는 우려다. 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2019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를 보면 국가부채가 사상 최초로 1700조원을 넘어 1743조원을 기록했다. 이중 중앙·지방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는 728조원으로 역시 사상 최초로 700조원을 초과했다. 국민 1인당으로 치면 1409만원에 달하는 액수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전에도 현 정부 들어 나랏빚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경고가 있었다. 무리한 소득주도성장 추진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재정으로 덮으려는 행태를 두고 재정 중독 비판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면 썩기만 할 뿐”이라며 확장 재정 기조를 고집했다. 이렇게 쉽게 나라 곳간을 허물면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남유럽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국가 경제와 재정을 책임지는 우수한 두뇌들이 잘 알아서 대처해나갈 것으로 믿지만 젊은 세대가 덤터기를 뒤집어쓸까 마음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하루속히 여야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액에 합의하고 국회에서 통과시켜 적어도 4월 안으로 국민 개개인의 손에 쥐어주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