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본받을 만한 어르신들의 투표 정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본받을 만한 어르신들의 투표 정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4.17 13:34
  • 호수 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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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오전 9시 30분, 광주 북구 문흥1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제1투표소에 한 어르신이 다른 노인에 부축을 받으며 투표소에 들어섰다. 광주지역 최고령자인 올해 116세 박명순 어르신은 신원 확인을 한 뒤 펜을 쥘 힘이 없어 서명 대신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혀 지장을 찍고 투표용지를 건네받았다. 큰며느리인 박양심(65) 씨의 부축을 끝까지 받으면서도 그렇게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다.

66.2%. 21대 총선 최종 투표율이다. 정부와 시민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치러진 선거답게 2000년대 들어 최고의 투표율로 마감됐다.  

필자가 살면서 그중 가장 후회되는 일은 20대 중반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21대 총선부터는 고등학교 3학년생인 만 18세부터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만 20세부터 참정권이 생겼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교에 입학한 2002년 치러진 대선을 가만히 지켜만 봐야 했다.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은 이틀 전에 군입대로 인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2006년 치러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당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포기해야 했다. 좀더 의지가 있었다면 투표소로 향했겠지만 미성숙했던 필자는 주권 행사보다는 잠을 선택했다.

2007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 비로소 처음으로 투표용지를 손에 쥐었다. 기표소에 들어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한 표를 선사했던 느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정 나이에 도달하면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준다. 이처럼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을 준 것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서구권에서도 백인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먼저 줬고 흑인과 여성들은 20세기 들어서까지도 이러한 신성한 권리를 박탈당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례적으로 광복 이후 1948년 치러진 제헌국회 선거에서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줬다. 서구에서 수백 년간 투쟁해온 권리를 우리나라 국민들은 너무 손쉽게 쟁취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어르신 세대가 쉽게 얻은 권리를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 선거마다 70%를 넘나드는 참여율로 투표율을 견인해왔다. 

다음 선거에서도 어르신들이 주도해 온 투표 참여 문화가 보다 많은 세대에게 전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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