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현 대한노인회 강원 양구군지회장 “취임과 동시에 신축 독립건물에 입주… 제가 복이 많아요”
엄영현 대한노인회 강원 양구군지회장 “취임과 동시에 신축 독립건물에 입주… 제가 복이 많아요”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4.24 14:13
  • 호수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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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간 사비로 양구 중·고교에 장학금… 어릴 적 신세 갚으려

경로당 급식도우미 등 노인일자리 680개…도 연합회 내에서 상위

[백세시대=오현주기자] 반평생 가까이 장학금을 주어온 대한노인회 지회장이 있다. 이 지회장은 30대부터 빠듯한 공무원 월급의 일부를 떼 내 어려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 선행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와 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뜻 깊은 연례행사가 됐다. 엄영현(80) 대한노인회 강원 양구군지회장 얘기다. 

지난 4월 중순, 엄 지회장을 양구군 양구읍 양록길에 위치한 양구노인복지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지금까지 총 70여명에게 준 것 같다”며 “장학 사업이 지회장 선거 공약 중 하나기도 하다”고 말했다.

엄 지회장에게서 장학금을 주게 된 배경과 지회 운영에 대해 들었다. 엄 지회장은 2018년 4월에 취임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없는지.

“양구군은 강원도에서 단 한 명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지역이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경우일 것이다. 그만큼 청정지역이라는 의미다.”

엄 지회장은 이어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가 뚫려 서울서 승용차로 약 2시간 이면 온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여생을 자연과 벗하기 위해 많이 들어온다. 양구 군민 2만3000여명 중 노인이 5000여명이고 대한노인회 회원은 4700명이다. 현지인들이 나이가 들고 대도시의 노인들까지 유입되면서 전반적으로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학 사업을 오래 했다고.

“1988년 처음 모교(양구중·고교)에 들러 교장 선생에게 장학금(160만원)을 맡기며 생활이 어렵지만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조회시간이라 전교생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제가 소개도 받고 후배들에게 박수도 받았던 일이 잊히지 않는다. 그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공부 열심히 해 대학 나와  지금 양구경찰서에 근무한다. 그 학생도 저처럼 모교에 장학금을 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로선 큰 액수인데.

“공무원 월급으로는 엄두도 못 낼 액수이지만 아내의 도움이 컸다. 아내가 당시 양구 중앙시장에서 기성복 장사를 해 여유가 좀 있었다.”

엄영현 양구군지회장(첫줄 왼쪽 세번째)이 지회 앞에서 직원들과 단합의 포즈를 취했다. 엄 지회장 왼편이 편은수 사무국장. 오른편은 이낙기 양구군게이트볼협회 회장.
엄영현 양구군지회장(첫줄 왼쪽 세번째)이 지회 앞에서 직원들과 단합의 포즈를 취했다. 엄 지회장 왼편이 편은수 사무국장. 오른편은 이낙기 양구군게이트볼협회 회장.

엄 지회장이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보은’의 차원이었다. 어린 시절 지독히 가난했다. 6·25전쟁 통에 인민군의 집단학살로 부친을 잃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엄 지회장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집안 생계를 떠맡았다. 아침에 땔감을 때면 저녁 땔감을 걱정해야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등록금을 대줘 간신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하루는 강원도지사가 학교에 들러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취직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엄 지회장은 “공부를 못하는 제가 어떻게 그 해에 일등으로 졸업하게 돼 도지사의 약속대로 양구군청에 취직이 됐다”며 “학교, 도지사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학 사업이 지회장 선거 공약이기도.

“2년 전 지회장 선거에서 매년 사비로 500만원씩 임기 동안 내겠다고 했다. 지회장 선거 공탁금을 포함해 제반 비용이 그만큼 들지 않나. 제 경우는 경쟁자 없이 단독으로 추대됐기 때문에 그만한 돈이 남은 셈이다.”

엄영현 지회장은 33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강원도청, 원주시청, 속초시청 등지에서 근무했다. 재경양구군민회장을 지냈다. 대한노인회 양구군지회 노인대학장을 거쳐 현재의 자리에 올랐다.

-양구의 노인복지 수준은.

“강원도에서 중간 정도일 것이다. 제가 복이 많은가 보다. 제가 지회장으로 추대되기 직전에 지회 단독건물이 완공돼 잘 쓰고 있다.”

양구군지회 회관은 군에서 75억원을 들여 2년 전 신축했다. 연건평 300평의 3층 건물로 1층은 지회 사무실, 2층 프로그램실, 3층은 대강당으로 사용한다. 읍내 한 복판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엄 지회장은 “재정 여력이 없다고 외딴 곳에다 지으려고 해 우리가 반대를 많이 해 겨우 이 자리를 얻었다”며 “타 지회에서 건물을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군청의 노인회 지원은 어떤가.

“군수께서 잘 해주신다. 집도 지어주고 예산도 많이 지원해주고 지회 직원들 대우도 잘 해주고 있다. 그에 상응해 노인들도 군정시책을 적극 돕기도 한다.”

-경로당 회장 활동비는. 

“관내에 91개 경로당이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경로당 회장들에게 한 달에 한 번 회의 참석 교통비 명목으로 2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액수가 적어 군수에게 5만원, 1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여러 차례 얘기하지만 그게 맘대로 잘 안 되더라.”

-노인일자리는 어떤가.

“우리가 경로당에서 식사준비를 돕는 도우미를 2014년에 가장 먼저 실시했다. 경로당식사도우미가 105명이 있고 따로 청소 등을 해주는 환경도우미가 102명이다. 노인일자리가 총 680명으로 강원연합회에서 상위에 속한다. 주로 노노케어, 공영주차장관리, 영농사업 등이다.”

-영농사업이라면.

“회원들이 휴경지에다 들깨를 경작해 내다팔아 수익금으로 경로당 운영비에 보탠다. 여기 노인들이 농사를 져서 그런지 다들 튼튼하고 오래 산다.”

80이 넘은 엄 지회장도 ‘현역 농부’이다. 4000평 논농사에 소출 500만원을 올린다. 본인과 가족의 일 년치 식량을 제외한 액수이다. 나머지 2000평에서 옥수수 등을 경작한다. 엄 지회장은 “농사 져서 한푼 두푼 모아 장학금을 마련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33년간 공무원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한창일 때 공무원들이 일 다 했다. 면마다 맡아서 지붕, 화장실 개량하고 다리 놓고 농사도 도왔다. 길 가장자리에 벼 심은 거 공무원들이 다 한 것이다.”

-대한노인회와 인연은.

“전임 지회장 선거가 3파전으로 치열했다. 당시 저는 노인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단지 친구로서 전임 지회장 선거운동을 도왔다. 전임 지회장이 선거에 이기자 저를 노인대학장 자리에 앉혔다. 노인대학장 시절 재밌게 일했다. 강당에 빔 프로젝트 시설을 갖추고 스마트폰 카톡에 올라오는 유익한 글과 건강정보, 동영상 등을 USB(이동저장장치)에 담아 노인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반응이 무척 좋았다.”

전임 지회장은 단임으로 임기를 마치고 엄 지회장에게 자리를 승계하는 식으로 물러났다. 엄 지회장은 “경쟁자가 나왔다면 (지회장 선거에)나갈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임기 2년이 남았다. 꼭 이루고 싶은 건.

“선거공약(장학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회원들이 노년을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꿈이다. 코로나 아니었으면 지금쯤 어르신건강체조경연대회 준비로 경로당이 들썩거렸을 거다. 노인들이 저마다 색다르게 옷을 입고 프로그램 강사 따라 몸을 마구 흔드는 거 보면 아주 재밌다. 또 하나 있다면 직원들 처우 개선이다. 군수도 잘 해주고 싶어 하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자주 얘기를 드린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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