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코로나 우울감을 해소할 위로와 희망의 인사 / 김동배
[백세시대 / 금요칼럼] 코로나 우울감을 해소할 위로와 희망의 인사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0.04.24 14:38
  • 호수 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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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에 사는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 사경 헤매다 회복

그 소식을 들은 친구·친지들이 

위로·격려의 말 보내줘 큰 힘

난국 속의 희망은 연대감에 있어

LA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아들이 지난 3월 초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거의 죽었다 살아났다. 심한 근육통으로 시작하여 발열과 호흡곤란으로 거의 한 달을 고생하였다. 한국에 들어오기가 마땅치 않아 그냥 미국에 남아 자가격리 하면서 회복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폐렴증상은 조금 남아있다. 젊은이는 면역력이 좋아 사망으로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우람하던 녀석이 핼쑥해진 것을 보니 혼자서 사경을 헤맨 것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다.  

아들의 감염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는 혹시 악화되어 정말 불행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애태우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당시 미국의 병원과 보건소에서는 아들과 같은 정도의 증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미국 의료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내가 아는 한국 의사들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소견을 들어 아들에게 전달하면서 금세기 최강국인 미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덩치가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고 작아도 슬기를 발휘하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유럽의 몇 나라들처럼 한국도 강소국(强小國)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아들의 감염 사실을 친구와 친지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리게 되었는데 그들이 보여준 위로와 염려는 우리 부부가 속수무책으로 걱정만 하면서 무력감 속에서 보내야 하는 기간에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은 아들의 쾌유를 위해 전화와 문자를 많이 보내왔다. “큰 걱정이 되시겠네요.” “기도할게요.” “청년이니까 잘 이겨낼 거예요.” 우리 부부는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사실에 큰 격려를 받았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시름에 빠져있을 때 전화 한 통화, 문자 한 줄이 이렇게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어려움을 당했던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치레 정도가 아니라 진정어린 위로의 말 한 마디를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였다. 이 자리를 빌어 코로나로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기저질환이 있는 고령자의 치사율이 높다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요즘 자주 듣는 말은 우리가 평범한 일상생활, 특히 외부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친구 만나고, 쇼핑가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여흥을 즐기고, 공연 보러가고, 종교집회에 참석하고…. 감염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오랫동안 자유로운 활동을 억압하면 우울증상이 나타나는 등 분명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인간은 모여서 각자의 생각과 재능을 교류할 때 발전이 이뤄지는 법인데 그걸 제대로 못하니 퇴보하는 느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경제 활동이 거의 마비되면서 앞으로 경제 위기가 어떤 모습으로 닥쳐올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바이러스는 계속 변형하기 때문에 이 감염병은 종식이란 게 없다고 하니 어느 정도 선에서 이것들과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하다. 

이런 난국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이 보인다. 이번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겪는 답답함과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세계 유명 박물관이나 교향악단들이 유튜브 등 SNS로 미술작품이나 음악공연을 무료로 보여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되고 있다.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라벨의 스페인 무곡 ‘볼레로’를 구미의 유명 교향악단 단원들이 동시에 각자 자기 집이나 연습실에서 연주하고 이걸 합성한 동영상을 만든 것이다. 50〜70명의 단원들이 서로 별개의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연주하지만 관객은 간접적이나마 한 자리에서 공연을 보는듯한 느낌을 갖는다. 모든 공연이 취소되는 힘든 시기에 지휘자, 연주자, 관객 모두가 마음을 함께 모아 연주하고 관람함으로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같이 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확인해준다는 의미에서 참 좋은 시도라고 보여진다. 

이 절망과 공포의 시절에 아름다움과 영감을 공유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배가 침몰하면서 승객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도 음악가 몇 명이 차분히 갑판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었다. 인류가 존속하고 발전하는 데는 창의성, 협동, 규약 등 기여하는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한 가지 또 중요한 요소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상호간에 위로와 격려로 희망을 교류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랑클은 2차 세계대전 중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의 수감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 의미치료)를 창시하였다. 그는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느냐 죽느냐는 것은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간직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주장하였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속된 많은 모임과 단체는 ‘위로공동체’가 될 필요가 있다. 자연재해, 전쟁, 기근, 역병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때 우리는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희망을 공유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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