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건강보험, 얼마나 도움 되나
[백세시대 / 세상읽기] 건강보험, 얼마나 도움 되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4.29 20:21
  • 호수 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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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증명됐다.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 중 개인 부담은 단돈 4만여원에 불과하다. 개인마다 회복 기간이 다르지만 대략 2주일을 기준으로 총 1000만원 가까이 소요된다. 이런 엄청난 비용을 건강보험 등 국가가 지불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국가는 코로나 입원자나 격리자에 대한 생활비도 주고 있다. 1인 가구는 45만여원, 2인 가구는 77만여원, 3인 가구는 100여만원, 4인 가구는 123만여원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같은 국가비상사태가 아닌 개인적인 질병의 경우 의료 혜택 수준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누구나 피부로 느낀다. 최근 60대 초반의 주부가 자신이 기르는 애완견에 입술 부위를 물려 약 2cm가 찢어졌다. 신촌에 거주하는 주부는 간단한 지혈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성형외과를 찾았다. 주변에만 성형외과가 무려 20여곳이 성업 중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형외과마다 치료를 거부했다. 주부는 간호사들로부터 ‘우리 병원은 쌍꺼풀, 코 높이는 수술이나 살 빼는 시술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런 걸 해주는 성형외과를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국 주부는 대여섯 곳의 성형외과를 돌다가 시간이 오후 6시가 넘어 인근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대학병원은 코로나19 방역으로 전쟁터 야전병원 같았다. 응급실 입구에 천막들이 쳐져 있고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설경호원들이 강압적인 자세로 발열증상 유무를 묻는 설문지 작성을 지시했다. 응급실로 향하는 문을 들어서자 입구에서 한 여성이 체온을 재며 방금 전 작성한 설문지 내용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최근 15일 전후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가 등등. 주부는 반복되며 시간이 걸리는 검역과정을 마치고나서야 비로서 의료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부는 그날 밤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20대의 인턴은 “입술 부위는 치과치료를 받는 것으로 안다. 의사 선생님이 오실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한 시간 넘게 불편한 의자에 앉아 의사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치과 전문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주부는 그날 소독 수준의 응급처치와 사흘 치 약 처방을 받고 귀가했다. 진료비는 총 8만여원. 의사도 만나지 못한 채 소독과 항생제만으로 큰돈을 지불한 주부는 “불의의 사고는 밤낮을 구분하지 않는데 시간을 기준으로 병원 이용(응급실)에 대한 별도의 비용을 과다하게 청구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행태는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의 측근(60대 후반)도 건강보험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병원에서 간경변 초기, 췌장낭종 진단을 받았다.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CT촬영(8만여원), 위 수면내시경과 혈액검사(16만원), 내시경초음파(62만원) 등 총 90만원 가까이 들었다. 대부분의 항목이 비급여로 처리됐다. 

퇴직 후 100만원도 안 되는 국민연금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는 “매달 20만원 가까이 건강보험료를 내면서도 이번에 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큰돈을 마련하려니 눈앞이 캄캄하다”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수술비 걱정으로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말했다.

서민의 과다한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건강보험이 코로나 감염자에 대한 특별대우(?)와 달리 애초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의 말은 그런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생전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관리하는 김 원장은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어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을 수 있다면 치료를 다 받아야 한다”며 “연명의료가 됐던 웰다잉이든 그게 존엄하고 자발적인 자기 결정이 되기 위해선 노년기의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책임을 져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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