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인간적인, 너무도 이기적인! / 오경아
[백세시대 / 금요칼럼] 인간적인, 너무도 이기적인! / 오경아
  •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0.04.29 20:29
  • 호수 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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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코로나 탓에 인적이 끊긴 지구에 

하늘이 개이고 야생동물이 활보

뜻하지 않은 변화 생겨

자연과 더불어산다는 의미

요즘 새로이 깨닫게 돼

작년 가을 500알도 넘는 튤립과 수선화 심느라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고생을 했다. 그때 알뿌리를 심던 내 마음은 ‘내년 봄 찬란한 봄을 보리라’ 이랬다. 그때가 되면 지인도 불러 꽃 자랑도 실컷 하고 차 한 잔 마시며 하나마나한 이야기들을 정성껏, 즐겁게 해볼 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올해 마당을 뒤덮을 정도로 색도 찬란한 꽃들이 아우성을 치듯 피었는데 매일 아침 나는 홀로 조용히 꽃밭을 걷는 거로 만족한다. 그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이 전 세계 호모사피엔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으니 다시 생각해봐도 기가 찰 노릇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에는 설마 했고, 그 다음은 너무 무서웠고, 지금은 언제까지려나 마음의 대비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지구에 뜻하지 않았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맑아지고, 하늘이 개어 보이지 않던 산이 나타나고, 사람의 발걸음이 끊긴 도시로 야생동물들이 활보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정원도 같은 현상이 많았다. 나는 분명히 내 영토라고 확실하게 담장도 치고, 측량소에 의뢰하며 빨간 말뚝까지 박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경계를 표시했건만, 우리 집을 단골로 드나드는 야생동물들의 입장은 달랐다. 

우리 집 산딸나무를 유난히 좋아하는 직박구리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낭창거리는 줄기에 앉아 쉬어가고, 금실이 좋아 꼭 짝으로 다니는 참새는 우리 집 낡은 한옥 틈새를 이용해 박공 속에 집을 짓고 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쫓아보려고도 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남편과 나는 요즘 마음을 바꿨다. 같이 더불어 살아보자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땅에 경계를 칠 때,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들과 합의를 했던 적이 있나! 그들에게 묻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우리 맘대로 경계를 치고, 건물을 짓고, 몰아내고, 박멸하고, 그렇게 그들의 삶을 빼앗은 셈이기도 하다. 가끔 내가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나면 마당의 새들은 깜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도망을 친다. 그들 입장에서는 더불어 사는 내가 당황스럽고 예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원을 돌보고 가꾸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내게 더욱 선명해지는 교훈은 ‘더불어 살기’다. 식물도 압도적으로 생존이 뛰어나 다른 식물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이름도 없이 잡초라고 부르며 경계하지 않나! 또 특정 곤충이 엄청난 수로 늘어나게 되면 곤충의 불임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식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다. 

그렇다면 그간 지구 최강의 생명체로 살아온 우리 인간의 삶도 어쩌면 다른 동물들 입장에서는 무서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던 인구. 이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헤쳐간 숲과 산. 물길은 사람들의 식수를 위해 돌려지고, 야생동물들의 이동을 끊어버리는 도로가 온 땅에 생겨나고. 인간이 일으키는 화재는 수백만의 다른 생명체 삶을 헤치는 중이다. 

덕분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코로나19 탓에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크다. 나 역시도 속초에서의 생활 속에 이런 깨달음은 더 농도가 짙어지는 중이다. 정원에 내가 심은 식물은 정작 나를 보라고 꽃을 피우지는 않는다. 정원에 잠시 키를 낮추고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린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꽃 속에서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뒹글뒹굴하는 벌이 보인다. 하지만 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단풍나무의 단물을 먹으려고 개미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것도 보이고, 어린 장미 잎에 달라붙은 진딧물의 세력도 굉장하다. 회양목에 치명적인 응애도 이때쯤 극성이다. 그래서 요즘 나에게 개인적으로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약 쳐야 될까요?’라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적어도 가정집의 경우에는 단 한 번도 약을 치라는 조언을 해본 적이 없다. 약을 치는 행위조차도 실은 극단적으로 인간적인, 이기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심고, 내가 가꾸고, 나를 위한 정원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의 삶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병충해의 공격을 받았다고 식물이 모두 죽는 경우는 절대 없고, 그들 스스로 피해자도 생겨나지만 결국은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불어 사는 그들의 삶에, 그저 우리도 하나를 얹어서 같이 더불어 함께 잘 살아주면 된다. 그게 진정으로 우리가 이 지구에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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