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숲 산책 3]돈키호테, 중세 기사도 소설에 심취한 시골 귀족의 좌충우돌
[고전의 숲 산책 3]돈키호테, 중세 기사도 소설에 심취한 시골 귀족의 좌충우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5.04 09:54
  • 호수 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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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스페인광장에 세워진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스페인 마드리드 스페인광장에 세워진 돈키호테와 산초의 동상.

돈키호테의 우스꽝스러운 모험 이야기 통해 16세기 스페인 풍자

세르반테스의 명작… 독특한 서술구조 갖춘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무모하지만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을 흔히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가 1605년에 발표한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와 죽기 1년 전에 내놓은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주인공 돈키호테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는 ‘돈키호테’는 중세 유럽 기사에 대한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현실 감각을 잃은 라만차 지역의 시골 귀족(이달고) ‘알폰소 키하노’가 방랑기사가 되고자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조상이 물려준 녹슨 기사용구를 찾아 투구를 적당하게 손질해서 쓰고, 자신의 비루먹은 말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또 자신에게도 돈키호테(‘돈’은 남자의 경칭이고, ‘키호테’는 갑옷의 허벅지 보호 장비의 이름)라는 이름을 붙인다.

우스꽝스럽게 준비를 마치는 그는 로시난테와 함께 길을 떠난다. 한 술집에 도착한 그는 그곳을 성이라고 믿고 안으로 들어선다. 술집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행색을 보고 비웃고 돈키호테가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우스꽝스런 표현과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때 장난기 많은 술집 주인이 성주로 나서 우스꽝스런 의식을 치르며 그를 기사로 임명한다. 이후 돈키호테는 본격적인 모험에 뛰어들지만 시시하게 끝나고 한 시골거리에서 6일 동안 줄곧 두들겨 맞은 후에 집으로 후퇴한다.

그의 고향 마을에서는 그의 두 친구인 목사와 이발사가 돈키호테의 이성을 완전히 앗아가버린 책들을 없애기 위해 보관된 서가에 불을 지를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몸을 추스른 돈키호테가 두 번째 원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던 것. 그는 첫 원정의 실수를 보완하기 위해 심성은 착하지만 키가 작고 배운 것이 없는 농부인 산초 판사(Panza, 스페인어로 처진 뱃살을 의미)를 시종으로 데리고 길을 나선다.

어느 시골길을 지나던 돈키호테는 불현듯 서른 명이 넘는 거인들이 모여 거대한 팔을 허공으로 휘두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이 위협적인 거인들과 싸워 물리치는 것으로 자신의 용기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선언한다. “무슨 거인들이요?”라며 산초 판사가 어리둥절해 하는 순간 돈키호테는 말에 박차를 가해 거인이라고 착각한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당연하게도 풍차의 날개에 낚아채인 그는 들판에 내동댕이쳐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는다.

이후에도 이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양떼들을 병사들로, 종교 행렬을 적의 기사들로, 시골 처녀를 귀족 처녀로, 면도 그릇을 전설에 나오는 투구로, 범죄를 저지르는 불량배들을 불쌍한 노예들로 착각한다. 일련의 사건 끝에 상처투성이가 된 그가 결국 초라한 몰골로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1권이 마무리된다.

10년 후 발표된 2권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한 일이 책으로 출판돼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으며,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산초 판사와 함께 다시 모험을 나선 돈키호테는 도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었던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다양한 모험을 겪지만 역시 결말은 늘 씁쓸하게 끝난다. 마지막 모험을 마치고 난 후 풀이 죽고 병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비로소 자신이 환상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작품에는 고위 귀족부터 상인, 성직자, 농부, 병사, 대학생, 방랑자, 범죄자 등 1600년경 스페인 사회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당시 영국의 경제적인 번영에 밀려서 힘없이 몰락해가는 스페인의 현주소를 묘사한다. 영국이 시민계급인 상인들에 힘입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것과 달리, 스페인의 봉건 귀족들은 계속해서 세상과 동떨어진 과거의 이념에 매달려 있었다. 즉, 돈키호테가 기사도 로맨스 소설에서 묘사한 허황된 세계를 좇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16세기 스페인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지배 계급의 행태를 마음껏 풍자하고 조소를 보냈다. 또한 이전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와 세련된 전개 방식을 사용해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 양식을 창조해 냈다.

전 세계로 번역 출판되면서 ‘돈키호테’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만큼 폭넓고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돈키호테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에서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인물로 재조명 되기도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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