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골목길에서 만나는 보물들
[백세시대 / 세상읽기] 골목길에서 만나는 보물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5.15 14:34
  • 호수 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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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의외로 보물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경복궁 후문 건너편 완만한 골목길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이, 왼편에 맛 좋기로 소문 난 만두칼국수집이 있다. 작은 갤러리와 예쁜 카페가 길 양쪽으로 즐비한 내리막길 끝에 사통팔달로 열린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큰 건물로 왼편엔 정독도서관, 오른편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딸 선정씨가 관여하는 아트선재센터가 있다. 

광장에서 주춤거리다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윤보선길을 택했다. 초입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윤보선 가옥(종로구 안국동 8-1외)이 있다. 쌓인 세월과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골목 따라 이어지는 담장 길이만 50여m는 족히 될 성 싶다. 

이 가옥은 1870년 민대감이 지은 후 금릉위 박영효가 머물렀다. 1910년 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버지 윤치소가 매입해 윤 대통령 후손들이 현재까지 살고 있다. 대지 1411평, 건평 250평 규모의 궁궐 같은 이 집은 대문채, 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아래채로 구성됐다. 

사랑채와 안채는 높이 180cm의 철제로 된 소문으로 구분해놓았다. 문을 들어서면 방형(사각형)의 연못과 해위 선생의 조각상이 자리한 정원이 나오고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의 이름은 ‘산정채’. 연못을 건너가는 다리와 작은 동산으로 꾸며진 전통적 정원의 모습에서 동산을 산으로 여기고, 산 옆에 마련된 별채라는 뜻에서 산정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작은 대청, 사랑방, 큰사랑방, 침방, 부엌 등으로 돼 있다. 사랑채 전면을 중심으로 서측과 뒷면 툇마루에는 ‘아’(亞)자살 난간을 둘렀고 사랑방과 침방 사이를 운치 있는 월문으로 만들었다. 산정채에는 ‘유천희해’(幽天戱海)라고 쓴 큼지막한 편액이 걸려 있다. 하늘과 바다 위에서 노닐고 춤춘다는 뜻으로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라고 한다.

이외에도 사랑채 곳곳에 편액이 걸려 있다. 복을 의미하는 ‘태평만세’, 순조가 쓴 것으로 알려진 ‘남청헌’ 등이다. 

ㄱ자형의 안채는 건너방과 대청, 큰방, 누마루를 두었다. 안채와 안사랑채는 샛담을 경계로 동서로 나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샛담에 나무교창을 들여 안채와 안사랑채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 안채와 사랑채의 영역은 구분했지만 내외간의 소통을 위한 작은 빗살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안사랑채에는 ‘사무사’(思無邪·간사한 생각이 없음)라고 쓴 현판과 김옥균이 쓴 것으로 전하는 ‘진충보국’(盡忠報國) 현판이 걸려 있다. 

아쉬운 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 가옥이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선 말 전통가옥의 원형을 잘 간직한 뜻 깊은 건축물을 국민이 자유롭게 접하고 감상할 수 있게 서울시가 어떤 조치를 취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했다.

윤보선길 옆으로 난 길은 감고당길이다. 500m 정도의 완만한 곡선길이며 양옆으로 음식점, 액세서리숍 등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감고당(感古堂)은 조선 19대 왕 숙종이 인현왕후의 친정을 위해 건축했다. 인현왕후가 폐위된 후에 감고당에서 거처한 이후, 민씨들이 대를 이어 살았다. 명성황후는 이 집에서 왕비에 책봉됐다. 덕성여고 본관 서쪽이 감고당이 있던 터다. 지금 감고당은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 옆으로 이전 복원됐다. 명성황후는 자신이 왕비로 책봉된 일을 회상하며 감고당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를 기념해 감고당길로 부른다. 

감고당길 중간쯤 카메라를 멘 50대 남자가 “무료사진 찍고 가라”고 한다. 믿기지 않아 지나쳤다 되돌아가 “진짜 무료인가” 하고 묻자 남자가 “40만명에게 무료사진을 찍어주었다”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돈 들여 사진현상까지 해주느냐”고 묻자 “좋은 일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남자가 건네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안국동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자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99칸 윤보선 고택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젊은 남자 둘의 버스킹 연주 ‘비바 라비다’(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와 무료사진 한 장에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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