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이 많은 꽃봉오리 끌고
[디카시 산책] 이 많은 꽃봉오리 끌고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20.05.20 17:09
  • 호수 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많은 꽃봉오리 끌고

앞만 보고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한 순간, 천 길 낭떠러지다

허공에 길 내며 다시 또 가는 수밖에


등꽃이 한창이다. 꽃이 꽃의 손을 이끌면서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 있다.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곳이 어디일지라도 앞만 보고 가겠다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그건 제 뒤를 따라오는 수많은 꽃봉오리 때문이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순간, 저 많은 꽃들은 길을 잃는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하늘 끝까지 가겠다고 바벨탑을 쌓은 것은 창조주의 권능에 도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 꽃봉오리들은 제가 가야할 길이 저 길 하나뿐이므로, 가야만 하는 길이므로 갈 뿐이다. 마침내 길의 끝에 이르고 문득,발밑이 천 길 낭떠러지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하더라도 어쩌겠는가. 다시 또 허공에 길을 내며 가는 수밖에. 그것이 삶이지 않은가.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