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국가가 지켜야 할 간송 전형필의 정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국가가 지켜야 할 간송 전형필의 정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5.22 13:28
  • 호수 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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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 간송미술관이 보물로 지정된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술품 전문 경매사 케이옥션에서 5월 27일 진행되는 경매에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이 출품된 것이다. 

간송미술관은 사업가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세운 우리나라 최초 사립미술관이다. 간송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유출될 뻔한 서화·도자기·고서 등 국보급 문화재 5000여 점을 수집했다. 전 재산을 털어 “문화를 통해 나라의 정신을 지킨다”는 문화보국을 평생 실천했다. 간송의 정신은 후손들에게도 이어졌다. 간송의 타계 이후 장남 전성우(1934~2018), 차남 전영우(80), 장손 전인건(49) 씨 등이 3대에 걸쳐 간송 소장품 창고지기 역할을 맡았다. ‘한국의 미’를 소중히 간직하라는 간송의 유지를 받들었다.

경매에 나온 금동여래입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7세기 중반 통일신라 불상이다. 팔각 연화대좌 위에 정면을 보고 당당한 자세로 선 모습으로, 높이가 38㎝에 달한다. 나발(부처 머리털)이 뚜렷한 육계(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혹)가 높이 솟은 모양이다. 살짝 오므린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금동여래입상과 같은 해 지정된 금동보살입상은 6~7세기 신라 불상이다. 보살이 취한 손을 앞으로 모아 보주를 받들어 올린 모습과 양옆으로 뻗은 지느러미 같은 옷자락 모습은 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 호류사의 구세관음과 유사하다. 백제 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던 봉보주보살상과 일본 초기 불상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추측할 자료로도 가치를 가진다.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불쏘시개가 될 뻔했던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그리고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대한해협까지 건너 찾아온 스토리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누적된 재정난에 일부 소장품을 경매에 부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경매에 나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간송이 소중히 지켜낸 문화재를 누가 경매로 소유할지는 알 수 없지만, 되도록 국가 소장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간송이라는 개인이 지켜낸 그 문화재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간송미술관이 다시는 경영난에 보물들을 내놓지 않도록, 간섭을 하지 않는 방향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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