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2] 오발탄, 전후 소시민들의 삶 사실적으로 다룬 문제작
[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2] 오발탄, 전후 소시민들의 삶 사실적으로 다룬 문제작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5.22 14:14
  • 호수 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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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호’ 중심으로 전쟁이 남긴 상처와 전후의 궁핍한 사회상 고발

다양한 이미지가 교차하는 몽타주 기법 등 시도한 걸작으로 평가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무리하게 사랑니를 뽑은 한 승객이 택시에 올라탄다. 그는 행선지를 묻는 택시기사의 물음에 처음에는 자신의 집이 있는 ‘해방촌’으로 가자고 했다가 이내 갓 태어난 자식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목적지를 바꾼다. 하지만 이도 잠시 그는 다시 남동생이 체포돼 있는 경찰서로 가줄 것을 요청한다. 곧 택시가 경찰서에 도착했지만 승객 ‘철호’는 내리지 못하고 ‘가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리고 영화 ‘오발탄’은 택시기사의 안타까운 푸념과 함께 막을 내린다.

한국 사실주의 영화의 거목 유현목(1925~2009) 감독의 대표작 ‘오발탄(1961)’은 이범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철호의 가족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와 전후의 궁핍한 사회상을 그려냈다. 제7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됐으며, 1984년 영화진흥공사의 ‘광복40년 베스트10’에 1위로 선정될 정도로 한국영화 100년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철호(김진규 분)는 박봉에 시달리는 가난한 계리사(공인 회계사의 옛말)로 양쪽에 난 사랑니로 치통을 앓고 있지만 뽑을 여유조차 없다. 혼자 버는 돈으로 늘 ‘가자’라고 외쳐대는 정신이상의 어머니,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문정숙 분), 제대 후 변변한 직장 하나 없이 사고만 연발하는 동생 영호(최무룡 분), 여동생 명숙과 그리고 신발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어린 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는 월급날에도 치과에 가지 못하고, 딸아이에게 줄 신발을 뒤적거리다가 슬며시 놓아버리고 말 정도로 가난한 살림살이에 조금씩 지쳐간다. 

특히 철호의 치통이 더해갈수록 그의 삶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한다. 철없는 줄로만 알았던 여동생 명숙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공주가 돼 밤거리로 나서고, 남동생 영호는 애인이 살해당하자 실의에 빠져 은행을 털다 계획이 실패해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또한 전쟁의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어머니는 계속해서 ‘가자! 푸른 나라로 가자!’를 외치고 아내는 출산 끝에 목숨을 잃고 만다. 

결국 자포자기한 철호는 휘청휘청 걷다가 치과에 들어가 사랑니를 뺀다. 다른 쪽도 마저 빼줄 것을 요청하는 철호에게 의사는 출혈이 심해 위험하다며 거절한다. 이에 철호는 다른 치과에 가서 마저 사랑니를 빼버리고 집과 병원 그리고 경찰서 중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결국 “난 정말로 조물주의 오발탄일지도 모르겠다”고 자조적으로 읖조린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삶을 살았던 서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한국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공주가 된 ‘명숙’이 상이군인인 전 남자친구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한국전쟁 이후 피폐한 삶을 살았던 서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한국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양공주가 된 ‘명숙’이 상이군인인 전 남자친구와 우연히 만나는 장면.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의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점과 철저한 사실주의 관점에서 묘사했다는 면에서 전후 최대의 문제작으로 평가받는다. 철호와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처럼 아무런 희망도 찾지 못하는 전후 소시민들의 상징이다. 뼈아픈 가난과 절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분단과 전쟁의 상처이기도 하다. 작품은 이러한 상징을 통해 전쟁 직후 비참한 현실에 놓인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풍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작품 속 가족들처럼 영화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1950년대 말 자유당 시절 기획돼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당시 공보부의 영화 담당이 가위를 들고 “빈민촌의 초라한 판잣집이 나오면 나라 망신”이라며 삭제하던 자유당 시절, 유현목 감독은 해방촌 판잣집에 사는 월남민 일가족의 남루한 삶을 그린 이범선의 동명 소설을 선택했다. 당시 기술자협회장이었던 영화 조명계의 거장 김성춘 등과 의기투합해 기존의 제작 관행을 벗어나 감독과 배우, 기술자들이 서로 제휴하는 동인제 형식으로 제작에 착수했다.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당시 주연배우였던 김진규, 최무룡, 문정숙 등은 거의 무보수로 출연했다. 게다가 필름 살 돈이 없어 며칠씩 촬영을 접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현목 감독은 특유의 영상미학을 통해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탄생시켰다. 유 감독은 롱 테이크(컷 없이 길게 촬영하는 것) 기법을 통해 현실을 똑바로 들여다보려 했다. “가자! 가자!”는 어머니의 절규 위로 비행기 소음을 얹어 혼란스런 세상의 부조리를 부각시켰다. 한 장면 안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교차하는 몽타주 기법 등은 주제의 심각성과 함께 당시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들이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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