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엄마 성(姓)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면…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엄마 성(姓)을 자유롭게 선택한다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5.29 13:40
  • 호수 7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아무개와 추 아무개와 아들 철수, 성 아무개와 기 아무개의 딸 순이가 결혼해 영수를 낳았다면 ‘고추성기영수’라 불러야 합니까”

한 네티즌이 ‘양성 쓰기 문화 운동’을 일갈하기 위해 단 이 댓글은  널리 퍼져 많은 이들로 하여금 쓴웃음을 짓게 했다. ‘양성 쓰기 문화 운동’이란 아버지의 성(姓)을 물려받아 이름을 짓는 방식이 가부장제의 잔재라며 부모의 성을 나란히 써 이를 깨자는 주장이다. 실제 유명인사 중에서도 양성 쓰기를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엄마의 성은 곧 외할아버지의 성이므로 실상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성을 같이 쓰는 것밖에 안 된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 작명 방식은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고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씨 문화가 가부장적인 건 사실이다. 2005년 헌법재판소가 “성 역할에 기초한 차별로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호주제를 위헌이라고 판단하기 전까지 부모가 이혼을 하고 자녀들이 어머니와 살게 되더라도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라야 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게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한 민법 제781조 제1항이 규정한 부성우선주의 원칙의 영향이 가장 크다. 

물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혼인신고 시’ 결정해야 한다. 혼인신고서 4항에는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해당 항목에 ‘예’라고 표시를 하면 담당 공무원은 부부에게 협의가 충분했는지를 물은 뒤 협의서를 따로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이후 ‘부와 모 사이에서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합니다’라는 내용의 협의서와 주민등록증 사본을 제출해야 모든 절차가 끝난다. 이 4항 질문에 ‘아니오’를 체크하면 현재 법상으로는 태어날 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절대 쓸 수 없다. 필자도 혼인신고를 했지만 이런 항목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필자와 비슷할 것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 로드맵’에는 ‘부성우선주의’ 폐기를 담았고 이어 법무부 산하 위원회가 이를 정부에 권고하면서 민법 제781조 전면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폐지가 된다 해서 어머니의 성을 쓰는 사람이 즉각 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