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언컨택트도 좋다 / 신은경
[백세시대 / 금요칼럼] 언컨택트도 좋다 / 신은경
  • 신은경 차의과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5.29 14:39
  • 호수 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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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대학교 교수
신은경 차의과대학교 교수

온라인 수업에 비대면 면담에

 바쁜 학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컨택트’가 나쁘지만은 않아

 출퇴근시간 절약해 여유 찾고

 접촉은 줄지만 접속은 늘어나

몇 주, 혹은 한두 달이면 지나가겠지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절이 두 번 바뀌어 봄이 오고 여름이 코앞에 있는데도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으니 어두운 면을 모두 제쳐놓고 밝게 보자면, 내게는 거리두기 사회생활의 속도가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득문득 드는 생각은 나의 원래 용량은 소형차를 굴리는 정도의 배기량인데 그동안 트럭만한 차량을 움직일 정도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힘겹게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대학교 선생으로 학기 중의 나날은 한가할 틈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학생들과 마주하고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한가할 틈이 없긴 마찬가지이다. 매주 학생들이 시청할 온라인 강의를 녹화해야 하고 그걸 학습 시스템에 업로드해야 한다. 시간표에 예정되었던 수업 시간엔 줌(ZOOM)이라는 시스템의 도움으로 실시간 연결을 하여 학생들과 상호 주고받는 인터랙티브한 수업을 한다. 3시간 동안 눈앞에서 만난 듯 발표하고 토론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선사하는 맛에 서로 뿌듯한 기분이 든다. 화면을 가득 메운 20여 개의 조그만 네모들 속에 교수도 한 칸, 학생도 한 칸, 위도 아래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만족이다.

게다가 1학년 새내기 담임인 나는 전체 학생들을 화상전화로 연결해 면담을 한다. 몇 날 며칠에 걸쳐 비대면으로 50명 학생을 일일이 다 면담하고 나니 희한한 기분이 든다. 그 옛날, 펜팔로 편지를 주고받다가 정이 들어 친구도 되고, 연인도 되는 세상이 있었다는 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영상으로 주고받은 새내기들과의 대화가 우리를 더욱 가깝게, 더욱 보고 싶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이렇게 여전히 바쁜 날들이 숨 막히게 돌아가지만, 하루 100km 가 넘는 출퇴근 시간 대신 나는 건강한 여유를 얻는다. 덕분에 주중 매일 한 편씩 성경을 읽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운동도 한다. 가족들의 얼굴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평소 같으면 학기 중에 다음 학기를 위한 연구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느슨한 언컨택트 (Uncontact) 시대 덕분에 집중적인 연구의 시간도 용케 잡아내었다.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인터넷 주문을 좀 더 해야 했고 그래서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를 걱정했다. 비교적 택배가 많지 않은 우리 집에서도 이렇게 종이와 스티로폼 박스가 늘어나니 앞으로 지구가 이 쓰레기를 어찌 처리할까 염려가 되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도 했다. 덕분에 쏜살같이 달리는 배달맨의 오토바이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부디 안전하게 사고 없이 임무를 다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매우 조심하며 식당에 가기도 한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식당에 들어서면 오로지 우리 가족만 덩그러니 앉아 밥을 먹게 되는 일도 많았다. 손님이 없어 애태우다가 우리를 반기는 주인의 얼굴을 보면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을 못하니 고립된 정적감을 느낄 수도 있으나, 이런저런 모임으로 길에서 빼앗겼던 시간은 SNS로, 전화로, 때론 화상전화로 더 다정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도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얼마나 오래,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이런 시대에 우린 어떻게 변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그렇지만 그리 걱정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내다보는 트렌드 전문가의 설명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내일에 대해 오히려 안도하게 하고, 기대하게 하니 말이다. 

전염병이 돌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책 <언컨택트 (Uncontact)>에서 저자 김용섭은 줄여서 언택트(정확하게 말하자면, 넌컨택드 (noncontact)인 ‘언컨택트’)는 ‘접촉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접촉하는 방법을 바꾼다’ 라고 해석한다. 

기성세대는 못 만나 불편하지만, 젊은이들은 안 만나 좋다고 한다니 확실히 새로운 트렌드임이 분명하다. 아니 젊은이들 사이엔 이미 진행되어온,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경향이 확실하다. 재택근무와 간섭받지 않는 직장 생활, 과거 한국 사회의 견딜 수 없도록 지나치게 끈끈한 관계를 털어버린 시원함으로 젊은 세대는 만족해하는 것 같다. ‘접촉은 줄이고 접속은 늘리고’ ‘연결된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선별하겠다는 결정’, ‘언컨택트가 가속화될수록 수평, 투명성이 높아져 실력자와 밀도 높은 콘텐츠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고한다.

은퇴가 가까운 나도, 아직 옛날을 그리워할 때가 가끔 있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물결에 따라 흐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김용섭을 인터뷰한 기자의 표현처럼 ‘미래를 아는 자의 침착한 눈동자, 웬만한 비바람에는 끄떡도 않을 튼튼한 나무 같은 태도’를 배우고 싶은 오늘이다.

*언컨택트 (Uncontact) : 비대면, 비접촉,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접촉하지 않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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