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27] 큰 도적을 제거해야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27] 큰 도적을 제거해야
  •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20.06.05 13:48
  • 호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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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적을 제거해야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이 다 죽을 것이다. 

大盜不去, 民盡劉  (대도불거, 민진류).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감사론(監司論)」


18세기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히 지적하고 강력한 개혁을 주장했던 다산 선생께서 지방의 최고 관리인 감사(監司), 관찰사에 대해 논하신 글이 바로 「감사론」입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깊은 밤, 담에 구멍을 뚫고 문고리를 따고 들어가서 주머니를 뒤지고 상자를 열어 옷이며 이불, 그릇 등을 훔치거나 가마솥을 떼어 메고 도망하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굶주린 자가 배가 고파 그런 것이다.

칼이나 몽둥이를 품에 감추고 길목을 지키다가 길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소나 말, 돈을 빼앗은 다음 그를 찔러 죽여서 증거를 없앤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어리석은 자가 본성을 잃어서 그런 것이다.

멋진 안장을 얹은 준마를 타고 부하 수십 명을 이끌고 가서, 횃불을 켜고 창과 칼을 벌여 세운 다음, 부잣집을 골라 곧장 마루로 올라가 주인을 묶고 재물 창고를 몽땅 털고 창고를 불사른 뒤 감히 발설하지 못하도록 거듭 다짐을 받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오만한 자가 배우지 못하여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도적인가? 관리가 되어 부신(符信) 주머니를 차고 인끈을 두르고 한 성(城)이나 한 보(堡)를 마음대로 다스리면서, 온갖 형벌 도구를 진열해 놓고 날마다 춥고 배고파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을 매질하면서 피를 빨고 기름을 짜내는 자가 도적인가? 아니다. 이는 단지 비슷하기만 할 뿐 역시 작은 도적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보통의 도적은 물론 심지어 부패한 관리마저도 도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건 도적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말씀이죠. 선생께서 말씀하신 큰 도적에 대해 정리해 봅니다. 

“여기에 큰 도적이 있다. 큰 깃발을 세우고 큰 양산을 받치고 큰 북을 치고 큰 나팔을 불면서 두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옥(玉)으로 꾸민 모자를 썼는데 뒤따르는 자는 수백 명이다. 여러 현(縣)과 역(驛)에서 안부를 묻고 영접하는 아전과 하인이 수백 명, 타는 말 백 필에 짐 싣는 말 백 필,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여인네가 수십 명…….< 중략>

좌정하고 나서는 서리(胥吏)를 불러서 여러 군현에 공문을 보내는데, 바칠 곡식을 돈으로 환산하여 바치도록 명령한다. 1곡(斛) 값으로 150냥을 바치면 노하여 꾸짖으면서 200냥까지 올린다. 곡식을 짊어지고 오는 백성이 있으면 곡식은 받지 않고 돈으로 200냥을 내도록 한다.<하략>”

이런 게 감사의 행차와 수탈 장면입니다. 백성을 보살피고 보호하라고 보내는 감사가 오히려 백성을 수탈하고 쥐어짜니 그 백성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도적은 여전히 법망을 무시한 채 활개 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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