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한명숙 사건 재조사 본질
[백세시대 / 세상읽기] 한명숙 사건 재조사 본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6.05 14:11
  • 호수 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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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쇠고집은 세상이 다 안다. 누가 옆에서 무슨 말을 해도 자기생각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한 번 믿음을 준 사람이 눈 밖에 난 행동을 해도 내치지 않고 보듬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최근 나왔을 때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그 판단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지만 문 대통령의 성격을 아는데 민정 수석 때 했던 태도를 보면 아마 못할 것”이라고 한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반면 자신이 추구하는 것은 끝까지 관철해내는 뚝심도 있다. 그것이 국정 운영에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국민 통합에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끝까지 밀고 나간다. 대표적인 게 재조사 문제가 불거진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사건이다.  

2015년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자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한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임을 확신한다”며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조사의 불씨가 이 말과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이 사건은 5만 달러 뇌물 사건이 발단이 됐다. 2006년 인사 청탁 명목으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았다고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곽씨 진술이 흔들리면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재판에선 의미 있는 증언이 공개됐다. 

“2009년 6월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100만원권 수표 10장)을 줬다”는 곽씨 진술이었다. 5만 달러와 별개의 돈으로 검찰 수사 착수 6개월 전에 줬다는 것이다. 이 사안은 대가성이 흐릿하고 본안과 관련 없다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았다. 다만 재판에서 이 수표 중 3장이 한 전 총리 남동생 통장에 입금된 사실이 공개됐다. 한 전 총리는 첫 재판 때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돈이 건네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 사건 재판 중에 시작된 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사건이다. 한 전 총리가 2007년 건설업자 한만호씨(사망)로부터 당내 경선 자금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 돈 가운데 수표 1억원이 한 전 총리 여동생 전세금으로 쓰였다. 한 전 총리가 곽씨와 한씨로부터 받은 수표가 각각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흘러갔다.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판단도 한 전 총리에게 최소 3억원이 전달됐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한 언론매체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을 공개하면서다. 이와 함께 2011년 한 전 총리 재판 당시 법정 증인으로 섰던 A씨가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조작 등 부조리가 있었다”는 취지로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A씨는 한만호씨의 구치소 동료 수감자다. A씨는 과거 법정에서 한 전 총리와 한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지만 9년만인 최근 ‘검찰이 위증을 교사했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여당은 이 사건의 실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무무 장관은 국회에서 “구체적인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며 “문제 제기가 있다면 예외 없이 한 번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법조계에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교도소 재소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갖고 검찰이 거짓 증언을 시켰다며 사건을 재조사한다면 국가 사법 체계는 무너질 것이라고 부정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재조사를 한다고 해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재심은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여권이 한명숙 구출작전을 벌이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한 전 총리의 한풀이를 해주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의 기를 꺾어놔 선거 뒤로 미뤄졌던 권력형 비리 수사의 힘을 빼려는 의도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 문(文)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검찰개혁, 사법개혁이 통과됐던 날 가장 기뻤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검찰 길들이기’라는 공수처 설치법 통과 얘기다. 한명숙 뇌물수수사건 재조사의 본질은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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