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외도 해보셨습니까 / 엄을순
[백세시대 / 금요칼럼] 외도 해보셨습니까 / 엄을순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20.06.12 14:27
  • 호수 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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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에게 모멸감 주는 외도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죄가 돼

그렇다고 처절한 복수는 비극

영화 ‘해피 댄싱’처럼

행복하게 마무리될 순 없을까

외도가 의심되는 70대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잠이 들자 부엌에 있던 칼로 남편의 성기와 오른쪽 손목을 절단한 69세 부인. 서울 도봉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는데 이 사건을 듣고 머릿속이 더 걸레같이 돼버렸다.

외도 때문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잠자는 남편 사타구니에 펄펄 끓는 기름을 들이부었다던 사람도 있었다. 외도. 시쳇말로 ‘부적절한 관계’다. 부적절하다? 외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 단어가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매우 낯설었다.  

내 기억으로는 ‘클린턴과 르윈스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새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닌가 싶다. 적절한지 아닌지를 떠나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라는 사실은 상대에게 엄청난 상실감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오죽하면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남편이 첩을 얻으면 부처같이 점잖고 인자하던 부인도 시기하고 증오하게 됨을 이르는 말)’란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그렇다면 외도가 상대방을 죽이고 싶을 만큼의 배신감을 준다는 걸 잘 알면서도 사람들이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일부일처’라는 것이 애초부터 ‘지속 가능’하기 쉽지 않은 제도인가. 살면서 적절한 행위만을 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사랑에 빠진 게 뭔 죄냐고? 이기적인 자기 사랑을 위해 배우자에게 모멸감을 주었다면 그런 사랑은 죄가 된다. 배우자에게 상처 주는 죄는 짓고 싶지 않고, 호르몬의 농간인지는 몰라도 외도에 대한 호기심은 있고.

그래서 외도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인가 보다. 대리 경험을 통해 머리채도 한번 잡혀보고 얼굴에 물벼락도 맞아보고 망신도 당해보고.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비지상파 드라마 역대 최고의 31.67%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Doctor Foster)’를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각색한 것이라는데 줄거리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부부의 관계가 남편의 외도를 시작으로 깨어지면서 증오와 배신, 끝없는 복수를 통해 서로 목을 조이는 무섭고도 치열한 사랑 이야기’이다. 믿음이 컸던 만큼 복수 또한 잔인하고 무섭고 끔찍했는데 시원한 복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속은 그다지 시원하지도 않았다. 결국 승자는 없고, 파멸되어 갈기갈기 찢긴 부부만 남는다는 이야기다. 

‘부부의 세계’가 외도에 대한 처절한 복수의 드라마였다면, 외도의 아픔을 겪으면서 오히려 새로운 행복을 찾게 된다는 영화도 있다. 제목은 ‘해피 댄싱’, 원제는 ‘파인딩 유어 핏(finding your feet)’이다. 식사할 때 무슨 음식을 먹는가보다 누구랑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기쁨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영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새로 알게 된 댄스반 커플과 함께 시원한 생맥주와 닭강정을 먹으며 함께 본 그 영화는, 소재가 외도임에도 불구하고 ‘문호리 댄스 스튜디오’의 강이 훤히 보이는 환상적인 조망 때문인지 ‘엔딩이 해피’해서인지 사뭇 환상적이었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외도 영화였다.

스토리는 ‘경찰 남편을 35년간 내조해온 부인이 은퇴 기념 리조트 여행을 앞두고 남편이 자신의 절친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외도를 통한 상실감이야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부부의 세계’가 처절한 복수와 다 망가진 부부로 마무리되는 것과는 달리, ‘해피 댄싱’에서는 부인의 새로운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처절한 복수 장면 하나 없어도 속이 뻥 뚫리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배우자의 외도라는 엄청난 상처를 받고, 남은 세월을 몽땅 다 복수하는 데 허비하는 것보다는 받은 상처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편이 훨씬 더 건강한 해결법일 터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다’라는 명대사도 있었다. 시간이야 늦지 않았을지 몰라도 진정한 사랑을 찾아다닐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은? 건강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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