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시간’ 어느날 송두리째 인생이 뒤바뀐 남자의 고군분투
영화 ‘사라진 시간’ 어느날 송두리째 인생이 뒤바뀐 남자의 고군분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6.12 14:45
  • 호수 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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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어느날 갑자기 형사에서 선생님의 삶을 살게 된 남자가 자신의 송두리째 사라진 인생을 되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수혁’(왼쪽)과 ‘이영’ 부부.
이번 작품은 어느날 갑자기 형사에서 선생님의 삶을 살게 된 남자가 자신의 송두리째 사라진 인생을 되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진은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수혁’(왼쪽)과 ‘이영’ 부부.

하룻밤 새 형사에서 선생으로 바뀐 한 남자의 자아 찾기 과정 담아 

정진영 감독 데뷔작… 조진웅 등 열연으로 완성한 따뜻한 미스터리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제 이름은 박형구고, 경찰이었고, 가족도 있고. 근데 그게 다 사라졌어요.”

수상한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는 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고 잠시 방심한다. 그리고 얼마 뒤 눈을 떴을 때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돼 있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선생이 형사의 꿈을 꾼 것인지, 형사가 선생의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상태에 놓인 형구. 그는 진짜 자신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그는 누구인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인생 전부를 도난당하고 새 신분을 갖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라진 시간’이 6월 18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은 한국영화 첫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남자’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에서 선굵은 연기를 펼쳐온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이번 작품은 연극처럼 크게 3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을 여는 1막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큰 사건인 ‘화재 사건’의 당사자들이 등장한다. 초등학교 교사 ‘수혁’(배수빈 분)과 그의 아내 ‘이영’(차수연 분)이다. 겉으로만 보면 마냥 행복해 보이는 이들 부부는 ‘이영’이 앓고 있는  ‘몹쓸병’ 때문에 남몰래 속앓이를 한다. 그러다 이들 부부의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고 마을주민들은 고심 끝에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사랑을 견고히 확인한 두 사람에게 화마(火魔)가 덮치면서 1막이 마무리된다.

이어지는 2막에서는 극의 진짜 주인공 ‘형구’(조진웅 분)가 등장한다. 아내 ‘지현’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둔 그는 수혁·이영 부부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사건을 수사하러 마을을 찾는다. 별 특이사항이 없어 보이는 화재 현장에서 그는 농원을 운영하는 ‘해균’과 마을이장 ‘두희’ 등 주민들의 수상한 행동을 목격한다. 

이에 의문을 품은 그는 깊숙이 사건을 들여다보다가 내막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을주민이 권한 술을 의심없이 마시다 만취해 쓰러진다. 숙취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한 통에 전화가 걸려오고 이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하루 사이 형사가 아닌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마지막 3막에서는 형구가 자신의 ‘사라진 시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고 사랑하는 가족도 몽땅 사라진 기이한 현상 앞에 형구는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해균’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급기야 해선 안 될 행동을 하고 진실 찾기는 점차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정보만 보면 한편의 추리물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곳곳에 웃음포인트를 배치한, 정진영 감독의 표현처럼 ‘슬픈 코미디’에 가깝다. 

또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 때문에 ‘따뜻한 미스터리’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수상한 마을주민과 이를 파헤치는 남자의 구도는 2010년 흥행작 ‘이끼’를 연상시켰지만 실제로는 이창동 감독의 최근 대표작 ‘버닝’(2018)과 더 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다소 불친절하다. 작품은 곳곳에 사건의 진실을 담고 있는 파편들을 숨겨둔다. 등장인물의 집마다 걸려 있는 ‘가족사진 및 액자’와 주인공이 수시로 마시는 ‘술’, 특정 사건마다 등장한 ‘불’과 인물들의 실루엣이 비치는 ‘창문’ 등 다양한 장치를 배치한다. 

보통의 영화들이 얽히고설킨 암시들을 영화 말미에 풀어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지만 이번 작품은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영화 안에서 어떠한 결론도 내지 않아 “그래서 형구는 어떻게 됐다는 거야” 같은 볼멘소리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극장을 나와 영화에서 제시한 장치들을 곱씹다보면 저마다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고 비로소 영화의 맥이 잡힌다.

정진영 감독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년 간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탄탄한 연출력을 발휘하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마저 높였다. 배우들의 호연도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조진웅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인 ‘형구’를 연기하면서 복잡한 심경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극을 이끌어 가는 또다른 인물 ‘해균’을 연기한 정해균, 투박한 외모와 달리 여성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등장할 때마다 큰 웃음을 선사한 이장 ‘두희’를 맡은 장원영 등 조연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해균의 아들 ‘진규’ 역을 맡은 노강민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되바라진 말투와 행동으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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