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미국 스톤 마운틴에 새겨진 유산 / 김동배
[백세시대 / 금요칼럼] 미국 스톤 마운틴에 새겨진 유산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0.06.19 13:59
  • 호수 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남북전쟁서 패한 남군 장군들

 연방국가 재건을 위해

 전범 취급하지 않고 사면

‘역사 바로 세우기’ 중요하지만

 과거 파헤쳐 벌주기는 혼란 불러

미국 죠지아주 애틀랜타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첫 번째는 가까운 교외에 있는 스톤 마운틴 공원(Stone Mountain Park)이다. 이 공원은 미국 남동부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서 1년 방문객이 400만 명이나 된단다.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을 중심으로 가족친화적 공원을 만들었는데 자연산책로, 인공호수, 캠핑, 골프장, 케이블카, 관광열차, 박물관 등 볼거리와 놀거리가 즐비하다. 특히 거대한 돔형의 화강암 산을 바라보고 조성된 광활한 잔디밭에서는 각처에서 모여든 가족들이 오후 시간을 걷기, 일광욕, 원반 던지기 등을 즐기고 와인을 곁들인 샌드위치를 먹으며 한가히 보내다가 밤이 되면 레이저 쇼를 즐긴다. 아쉽게도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임시로 폐쇄되어 있다. 

다채로운 색상의 레이저 쇼는 계절에 따라 애니메이션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를 선보이지만 압권은 남북전쟁이다. 200m 높이의 산 전면 중앙에 조각된 부조물은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연방 대통령, 로버트 리 총사령관, 스톤월 잭슨 장군 등 남북전쟁 당시 세 명의 남군 영웅 기마상이다. 이 부조물에 레이저를 쏴 남북전쟁의 몇 장면을 연출할 때면 관중은 열광한다. 관광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어우러진 부조물과 레이저의 환상적인 조합이 탄성을 지르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전쟁이 끝나고 150년이 지났는데도 당시 용감한 행적을 보인 장군들에 대한 관중의 사랑과 존경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노예 해방의 반대론자들이었고 결국은 참혹한 전쟁의 패장들인데 이렇게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애틀랜타 시내에 있는 남북전쟁박물관(The Atlanta Cyclorama and Civil War Museum)을 가본 적이 있다. 원형극장에는 360도 입체 파노라마 그림을 통해 남북전쟁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볼 수 있게 하였다. 지금은 이 자료들이 애틀랜타 역사관(Atlanta History Center)으로 옮겨져 있다. 박물관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았지만 남북전쟁이 일어난 배경에서부터 전쟁의 주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사진과 조형물, 공을 세운 장군들의 조각, 그리고 당시 실제 사용되었던 무기와 군장들을 적절히 배치하였고 패널의 설명은 매우 교육적이었다. 초등학교 학생이 관람해도 흥미를 느낄만한 방법으로 전시하였다. 그런데 가장 도전적이었던 것은 전시장 맨 마지막 패널에 쓰인 “당신은 남북전쟁에서 왜 남군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남군이 패배한 이유는 장군들의 지략과 용맹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부연합이 그들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남부인에게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해 항복한 패장들이 아니라 부족한 물자에도 불구하고 고향의 이익을 위해 사투를 벌인 영웅들이었다. 특히 리 장군은 흐트러짐 없는 위엄과 영도력으로 아직까지 남부인들에게는 전설적인 용장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전쟁에는 패했지만 전장에서 그들이 보여준 최고의 정신력과 헌신, 그리고 필요 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것보다는 항복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지혜로운 결단력에 대한 존경심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그들은 4년 동안 북군 36만 명과 남군 26만 명의 전사자를 포함하여 총 103만 명(전체 인구의 3%)의 사상자를 낸 내전의 괴수들이다. 미국 전체로 보면 그들은 체제 반역죄로 처벌받아 마땅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연방국가의 재건과 화합이라는 대전제 하에 주요 지휘관들은 전범으로 취급되지 않고 모두 사면되었다. 리 장군은 고향으로 가서 대학총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고, 데이비스 대통령만 유일하게 2년 여 감옥생활을 했을 뿐이다. 북부의 링컨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위해 통 큰 아량을 베푼 것이었다. 거인의 차원 높은 통치행위였다. 모름지기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국정목표는 국민통합이어야 한다.   

우리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역사 바로 세우기’란 말을 자주 들어왔다. 왜곡되게 기록되어 있거나 가르쳐 온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이 주장은 정말 소중한 것이지만 때로 섬뜩하다. 공훈이나 수훈도 다시 따져봐야 하고,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전 시대의 권력자들을 잡아 벌주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면 나라는 혼란스러워지고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최근에는 이 말을 너무 자주 들으니 지금 이게 무슨 전체주의 국가로 가기 위한 전초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이것이 내 편에 있는 사람을 세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지우는 작업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링컨 대통령 같은 사람을 ‘정치인(politician)’이라 하지 않고 ‘위대한 정치가(statesman)’라고 하는 이유를 곱씹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