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제동 ‘홍제유연’, 음침했던 ‘유진상가’ 지하공간이 예술거리로 변신
서울 홍제동 ‘홍제유연’, 음침했던 ‘유진상가’ 지하공간이 예술거리로 변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7.10 14:20
  • 호수 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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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의 상징이었던 '유진상가'의 음침했던 지하공간이 최근 공공미술을 입고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홍제유연에 설치된 팀 고워크의 작품 '온기'
홍제동의 상징이었던 '유진상가'의 음침했던 지하공간이 최근 공공미술을 입고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홍제유연에 설치된 팀 고워크의 작품 '온기'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2호로… 50년 간 버려진 곳에 예술 입혀

시민 참여로 만든 ‘홍제 마니차’, 홀로그램 ‘미장센_홍제연가’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서울 서대문구 홍은사거리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낡은 건물 하나가 있다. 1970년에 지어져 올해 반세기를 맞이한 ‘유진맨숀’(유진상가)이다. 폭 50m, 길이 200m로 지은 유진상가는 당시 최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로 서대문의 랜드마크였다. 유진상가를 짓던 시기 김신조 사태 등으로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전쟁 발발 상황을 고려해 상가 지하가 ‘대전차 방호기지’ 역할을 하도록 홍제천을 복개해 지었다.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 이 지하공간은 방치됐다. 지난 7월 1일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해 공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50년간 시민들이 지나다니지 못하게 막혀있던 유진상가 지하 구간은 홍제천이 흐르는 예술 공간 ‘홍제유연(弘濟流緣)’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서울시는 지난해 공공미술 대상지 공모로 장소성과 역사성 등을 종합 평가하여 서대문구의 ‘유진상가’ 지하 공간을 선정했다. 서울시는 매년 1곳의 대상지를 선정해 공공 미술을 입혀 특별한 장소로 바꾸는 ‘지역 단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2018년에는 ‘녹사평역 지하 예술 정원’을 조성한 바 있다.

시는 서울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 지하 공간이 50년 넘도록 버려져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건물을 떠받치는 100여개의 기둥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미술 작품을 설치하고, 조명예술을 접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서울시는 물과 사람의 인연(緣)이 흐르고(流),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는 의미를 담아 ‘홍제유연’이란 이름을 붙였다.

홀로그램 활용한 공공미술품 설치

홍제유연에는 ‘흐르는 빛_빛의 서사’, ‘미장센_홍제연가’, ‘온기’ 등 8개의 작품이 설치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홍제 마니차’를 만날 수 있다. 이 전시물은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을 주제로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모은 700여 명의 메시지를 정육면체 큐브에 새겨놓은 것이다. 각 큐브를 손으로 돌리면 시민들의 경험에서 나온 ‘삶이 끝날 때까지 즐기다 가길’ 같은 문구를 만나 볼 수 있다. 서로의 빛나던 순간들을 함께 공유하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자는 취지로 설치된 것으로 일부 조각은 아직 빈 상태인데 추후 시민의 온라인 참여로 채워질 예정이다.

뮌의 '흐르는 빛, 빛의 서사'.
뮌의 '흐르는 빛, 빛의 서사'.

공공미술 최초로 3D 홀로그램을 활용한 진기종 작가의 ‘미장센_홍제연가’도 눈길을 끈다. 중앙부에 설치된 길이 3.1m, 높이 1.6m의 스크린은 국내에서 설치된 야외 스크린 중 가장 크다. 중앙부를 포함해 크기가 다른 9개의 스크린이 연동돼 홍제천의 생태를 다룬 영상이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독특한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설치미술가 윤형민은 ‘SunMooonMoonSun, Um...’을 통해 땅속에 묻혀 있던 공간이 ‘홍제유연’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채워지는 소리와 빛의 의미를 한자음절의 뜻에 담았다. 흔들리는 수면 위에 투영된 이미지를 봐야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초등생이 만든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

42개의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팀 고워크의 ‘온기’도 눈길을 끈다. 역사적으로는 따뜻한 물이 흐르는 교류의 장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몸을 씻으며 마음을 치유하던 곳’이라는 홍제천 물길의 의미를 담아 빛과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돌다리를 밟고 빛 기둥 속에 서면 홍제천 물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센서에 체온이 전해지면 조명색이 변하는 양방향 기술을 적용, 딱딱하고 일방적인 느낌을 주던 기존 공공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또 다른 시민참여작인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는 초등학생들의 참여로 완성된 작품이다. 홍제초, 인왕초 어린이들이 홍제천의 생태계를 탐험한 후, ‘앞으로 이곳에 나타날 상상의 동물과 홍제유연 미래 생태계’에 대한 상상력을 담은 벽화다. 블랙라이트를 비춰가며 숨겨진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홍제유연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운영되고 향후에는 전시 작품 외에도 영화나 공연 등이 열릴 예정이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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