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 주민대표가 앞장 서면 경로당 폐쇄위기로 몰려
개정안, 주민대표가 앞장 서면 경로당 폐쇄위기로 몰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7.17 10:54
  • 호수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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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반드시 법으로 지켜줘야” , 주민과 상생 노력도 필요

경로당의 중요성 모르는 사람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경로당 없애는 길을 터준다니 조금 걱정이 되네요.”

지방의 한 A아파트경로당 회장은 본지 727호에 보도된 ‘경로당 용도변경 쉽게 해 물의’ 기사를 보고 4년 전 입주자대표와 갈등으로 경로당이 강제로 문을 닫았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입주자대표가 주민들에게 허위사실을 전파하며 경로당 폐쇄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상당수 주민들이 이에 휩쓸렸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져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A아파트경로당 회장은 “특정 주민들이 결탁해 여론을 조성하면 경로당이 폐쇄 위기로 몰린다”면서 “경로당과 어린이집 같은 필수 공간은 법으로 꼭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경로당 등 아파트 단지 내 필수시설의 용도변경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경로당 현장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입주자대표와의 갈등으로 폐쇄된 경험을 가진 경로당의 경우 충분히 악용될 가능성이 커 반드시 경로당은 용도변경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A경로당은 2016년 4월 주민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아파트경로당 개보수 공사를 입주자대표가 자신과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달 넘게 경로당 문을 닫아야 했다. 냉난방이 잘 되지 않아 경로당 회원들이 제기한 민원을 주민센터에서 해결해준 것인데 입주자대표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어르신들의 공간을 무단으로 폐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로당 임원들이 부도덕하다는 허위정보를 유포해 일부 주민들을 설득했고 이로 인해 상당 기간 경로당을 이용하지 못했다. 

B경로당 역시 입주자대표가 경로당 회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빌미 삼아 두 달 넘게 경로당에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역시 이 과정에서 경로당 회장을 비방하는 일방적인 주장을 펼쳤고 이에 동조한 주민들까지 나서면서 어르신들은 경로당 주변을 배회해야만 했다.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여가복지시설이기도 하지만,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가 있다. 사진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한숲시티 5단지경로당에서 초등학생 대상 충효예절 및 한문교실의 수료식 장면.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여가복지시설이기도 하지만,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가 있다. 사진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한숲시티 5단지경로당에서 초등학생 대상 충효예절 및 한문교실의 수료식 장면.

아파트경로당은 공립으로 운영되는 주택경로당과 달리 지역사회에서 입지가 좁은 편이다. 농촌경로당의 경우 마을 주민들의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함께 있어 주민들에게 공경받는 공간이지만 아파트경로당은 다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만약 체육시설이 필요하다고 입주자대표가 마음 먹으면 동대표 등을 설득해 여론을 조성해 다수결로 충분히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젊은 사람들은 경로당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는 신도시의 경우 주변 대부분이 아파트 단지여서 경로당이 없을 경우 이웃동네까지 수킬로미터를 걸어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법으로 150가구 이상 아파트에는 경로당 등을 의무로 설치하도록 한 것인데 이번 국토부 개정안은 이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국토부가 대한노인회가 제시한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한시름 놓게 됐지만, 노인사회 일각에서는 서울의 개방형 경로당 사업처럼 용도변경을 하지 않아도 지역주민과 경로당이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는 전 자치구에 2015년부터 개방형 경로당을 확대해 추진하고 있다. 경로당이 24시간 내내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착안해 일정 시간 혹은 경로당 공간 일부를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했고 경로당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유형도 다양하다. 지난해 기준 카페·동아리형 133곳, 돌봄형 26곳, 학습형 241곳, 도서관형 15곳, 영화관람형 103곳, 작은복지센터형 68곳 등이다. 

한 노인복지전문가는 “어린이집이 없는 아파트 경로당은 용도변경이 아닌 증축이 해결책”이라면서 “경로당이 운영되지 않는 시간과 유휴공간을 활용해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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