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기고] 노인들의 유일한 쉼터, 경로당
[백세시대 / 기고] 노인들의 유일한 쉼터, 경로당
  • 신진영 충북연합회 경로당광역지원센터 교육자원팀
  • 승인 2020.07.17 13:52
  • 호수 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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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충북연합회 경로당광역지원센터 교육자원팀

예로부터 ‘노인 공경’의 미풍양속을 가진 우리나라는 마을마다 어르신들의 공간이 있었다. 담소를 나누고 바둑‧장기 등을 두며 우애를 다지거나, 휴식이나 여흥 등에도 쓰이던 사랑방이나 정자 같은 곳들. 그것들을 만드는 주체도 개인이거나 문중, 향촌 등이 대부분이어서 민간 자생 커뮤니티(community)인 셈이었다.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그 기능은 행정기관이 조성하고 지원하는 노인복지시설들이 대신하게 됐다. 그래서 주 이용자인 노인에 대한 공경의 의미를 담아 ‘경로당’이라 부른다. 도시화와 공동주택단지 조성이 늘면서, 경로당은 어린이집 등과 함께 필수시설로 지정됐고, 현재 충북에만도 4176개, 전국적으로는 6만7000개소에 이른다. 

이 숫자만 보면 대한민국은 노인복지 천국이다. 하지만 이는 OECD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 노인빈곤률 1위라는 적색지표의 겉모습일 뿐, 그리 과하고 넘치는 시설이라 볼 수는 없다. 운영재원의 대부분이 회비나 후원금, 행정기관의 지원으로 이뤄지는데, 시설 수준도 고르지 않고 종사자들의 처우도 그리 넉넉지 못하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한 경로당 무기휴관 조처가 장기화 된 상황 속에서, 복지사각지대 노인들은 우울증까지 더해져 오직 경로당 열기만을 손꼽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 국토부의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는, 노인들에겐 어두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개정안은, 종래 아파트 단지들마다 필수시설(어린이집, 경로당, 놀이터, 운동시설, 작은도서관 등)들을 무조건 다 두지 않고, 주민들의 과반 동의만 얻으면 선택적으로 둘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얼핏,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시설의 효용성을 극대화하자는 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단지에 경로당을 꼭 만들어야 할까’, ‘어린이집이나 놀이터, 휘트니스센터, 도서실 등을 더 여유 있게 두는 게 낫지!’ ‘이참에 부족한 경로당 공간을 넓힐 수 있겠나’처럼 해당 단지에 실정에 맞게 용도변경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과반 동의로 선택하는 다수결의 논리가 복지에 쓰이면 위험하다는 것. 복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고, ‘필요한 사람에겐 특히 세심히’ 배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로 하는 이가 많은 것만 보장하는 복지는 소수를 희생하는 반쪽짜리 복지다. 소수도 배려하고 소외자가 없는 세심한 복지가 선진형 복지다. 

대한민국은 어느덧 노령인구 800만을 넘고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아동복지를 돌보지 않는 공동체도 미래가 없듯, 노인복지를 경시하는 공동체 역시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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