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등뼈
[디카시 산책] 등뼈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20.07.17 13:54
  • 호수 7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등뼈

물 빠진 바다에 와서야 바닥도 

등뼈가 있다는 걸 알았다

 

저 등으로 져 나른 물길이 어디 한 두해였을까

들고 나는 모든 목숨 저 등 밟고 왔겠지 


바다는 하루에 두 번 갯벌이 드러난다. 물에 잠겨 있던 갯벌이 드러나자 마치 사람의 앙상한 등뼈인 양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등이 나타났다. 

바다는 셀 수도 없는 날들 동안 저 등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업어 키웠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고단했을 것인가.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파도와 싸우며 저 등에 업혀있는 목숨들을 한 순간도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모든 아버지가 가족이라는 등짐을 평생 짊어지고 사셨던 것처럼, 갯벌에 기대고 사는 뭇 목숨들을 다 품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바닥처럼 말이다. 바닥이 있어 우리는 그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