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수돗물 유충’ 불안감 전국으로 확산… 상수도 설계기준 지키지 않은 게 화근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수돗물 유충’ 불안감 전국으로 확산… 상수도 설계기준 지키지 않은 게 화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0.07.24 11:22
  • 호수 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천 지역 수돗물에서 유충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 부산, 경기 등 다른 시도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의심 신고가 이어지고 있어 수돗물 유충에 대한 불안감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수돗물 유충’ 사태는 지난 7월 9일 인천 서구 왕길동 빌라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처음 민원을 접수한 인천시는 유충 발생 사실을 쉬쉬하다 뒤늦게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 채 “깔따구류가 유해하다고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혀 공분을 산 바 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아예 수돗물 사용을 중단하는가 하면, 아이를 씻기기 위해 생수를 사야만 했다. 인천 지역 맘카페에는 “샤워기 필터에서 (유충이) 작은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움직이고 있었다”는 등 피해 사례가 속속 올라왔다.

인천시는 지난 13일 첫 보도가 나간 다음날에야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고 대응 상황을 공개했다. 지자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중앙정부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파문이 번지자 ‘긴급 점검과 선제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환경부는 전국 고도처리 정수장 49곳에 대해 긴급 조사를 실시했고,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정수장은 모두 고도처리 설비인 활성탄 여과지(활성탄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활성탄지에서 깔따구 유충이 번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관리부실 가능성을 지적한다. 활성탄 필터는 길게는 30일, 짧게는 10일 과정으로 세척을 한다. 더 자주 하면 여과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세척 주기를 줄이기도 어렵다. 

하루 내지 이틀에 한 번씩 세척하는 모래여과지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긴 주기여서 원천적으로 유충의 부화 가능성이 높다. 결국 활성탄 필터는 세척 주기도 길고, 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완벽한 방충 시설이 전제돼야 한다. 상수도 설계기준에 ‘환기나 출입 설계를 할 때 외부로부터 빗물, 먼지 및 작은 동물 등이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로 해야 한다’고 명시된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는 이 같은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 환경부 점검 결과, 12개 정수장에는 방충망이 아예 설치되지 않았다. 바닥 청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외부 오염 요인이 제거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지자체와 정부의 늑장 대응도 한몫 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로 홍역을 치렀지만, 이번에도 민원 발생 닷새 만에 관련 내용을 공개하고 뒤늦게 수돗물 음용 자제를 요청하는 등 안이하게 대처했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문제가 된 고도처리 정수장 외에 일반 정수장 435개소도 조사를 마무리하라며 정국 정수장 긴급 전수조사를 통한 선제적 대응을 지시했다. 

환경부 또한 수돗물 유충을 확실하게 막겠다고 했다. 생물체가 활성탄지에 유입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정수장 시설 문제로 유충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면 상수도 설계 기준을 개선하기로 했으며, ‘고도정수처리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수돗물 유충 대응 상황실을 운영하기로 했다. 

인천시는 서구 공촌정수장의 고도정수처리 공정을 중단하고 표준정수처리 공정으로 전환했다. 정수장과 배수지에는 거름망을, 4개 정수장 여과지에는 60개의 해충 퇴치기를 설치했다. 

안심하지 못하는 수돗물은 재난과도 같다. 수돗물은 시민들이 매일 마시고 사용하기 때문에 불안감을 조기에 해소하는 일이 중요하다. 

수돗물처럼 국민 건강이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다고 할 만큼 꼼꼼히 대응해야만 한다. 하루 속히 대책을 마련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정확한 원인 규명과 함께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