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수치심 실종 사회
[백세시대 / 세상읽기] 수치심 실종 사회
  • 관리자
  • 승인 2020.08.07 14:21
  • 호수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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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을 보면 두 가지 행동 패턴이 도드라진다. 맹목적인 충직함과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 그것이다. 야단 치고 심지어 코끝을 때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꼬리 치며 안긴다. 반면에 부끄러움, 수치심은 전혀 없다. 보고 싶은 자리에 변을 보고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챈다. 그러니까 동물이다.

수치심은 인간에게만 있는 미덕 중 하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간인 이상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수치심은 내재돼 있다. 그건 양심과 같아서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수액처럼 주사바늘을 통해 가슴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될 물질도 아니다. 인간이 동물처럼 수치심이 없다면 이 세상은 ‘개판’이 될 것이다.

요즘 우리사회 일부에서 수치심이 실종됐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가진 자, 권력자들 가운데 수치심을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왕왕 있어 우리를 난감하게 만든다. 그런데 수치심을 모르는 이들 사이에 색다른 존재가 합류했다. 바로 시민단체이다. 물론 모든 시민단체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특출 나게 정의와 공정을 앞세우는 일부 시민단체가 그렇다는 얘기다. 

오래 전의 에피소드다. 서독 루프지역의 한 광산에서 일하던 어떤 한인 광부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후에 이 소식을 들은 동료들은 집단적 위력으로 그를 위협해 라인 강가로 끌고 갔다. 그리고 한인사회와 조국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자결하라고 강요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흔히 볼 수 광경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드문 경우이다. 다행히 그는 그날 저녁 화를 면할 수 있었으나 이 사건은 다음날 서독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수치심과 자존심이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수치심이 너무 강해도 탈이다. 최근 목숨을 끊은 서울시장은 우리에게 수치심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만약 그가 수치심이 조금 덜 있었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수치심의 정도가 양심과 체면, 윤리보다 더 강한 이들은 최악의 벽에 맞닥뜨렸을 때 종종 자살이란 방식을 택한다. 이들은 너무나 예민한 탓에, 또는 덜 뻔뻔스러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거나 탈출구를 찾지 못해 끝장을 보는 것이다. 연필을 훔쳤다고 의심 받자 생을 마감한 초등학생, 겁탈 당했다고 나무에 목매단 여성, 뇌물 혐의를 받자 한강물에 뛰어든 사업가 등은 수치심이 너무 센 이들이다. 

공자는 위정자나 지식인은 남다른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선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항상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의 언행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 외국에 사절로 나가면 제 임금의 명령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비로소 선비라 할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 다음 가는 선비는 어떻습니까?” 공자는 “집안사람들로부터 효자라고 칭찬 받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우애롭다고 칭찬 받는 자일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자공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정치한다는 자들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아, 한말들이 그릇 같이 작은 기량을 가진 자들이다. 논할 게 못 된다.”

반면에 수치심이란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 행동의 어디가 잘못됐는지조차 모른 채 환한 대낮에 떳떳이 얼굴을 들고 다닌다. 심지어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되레 큰소리 치고 협박까지 한다. 최소한 지난 정권까지만 해도 그런 이들은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부류가 녹조처럼 자라나 국민을 갈등과 반목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곤 한다. 표창장 위조, 위안부할머니 기부금 횡령, 울산시장 불법선거개입 같은 사건에서는 수치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이 반려견과 다른 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수치심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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