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2] 편집은 떡, 죽, 엿을 만드는 요리와 같다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2] 편집은 떡, 죽, 엿을 만드는 요리와 같다
  • 유현종 포럼출판사 대표
  • 승인 2020.08.14 13:39
  • 호수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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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은 떡, 죽, 엿을 만드는 요리와 같다

또한 모두 맛이 있다

亦皆有味 (역개유미)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2권 「나씨가례집어서(羅氏家禮輯語序)」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오랜 유배 생활 속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자신의 학문 체계를 완성했다. 「나씨가례집어서(羅氏家禮輯語序)」는 다산 초당으로 정약용을 찾아온 나경의 『가례집어』에 써준 머리말이다. 정약용은 ‘나씨가례집어서’에서 책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비슷한 책이 있다고 해서 10년 동안 정성을 쏟은 책을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콩과 조는 하늘이 내린 맛좋은 곡식이다. 그것을 쪄서 술을 만들어도 맛이 있고, 끓여서 떡을 만들어도 맛이 있다. 또 다양한 요리법으로 범벅·죽·유밀과·엿 등을 만들어도 모두 맛이 있다. 옛사람의 저술이 이미 갖추어졌다 하여 어찌 스스로 저술을 포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菽粟天下之至味也 故烝之爲饎焉有味 煎之爲餌焉有味 又轉而爲饘爲粥爲粔籹爲飴餳 亦皆有味 豈必以前人之述已備而固自畫乎)

곡식으로 술도 밥도 빵도 떡도 면도 죽도 과자도 엿도 만들 수 있듯, 문자로 철학서도 여행서도 교과서도 사진집도 악보집도 시집도 소설책도 그림책도 만들 수 있다. 편집은 곡식으로 다양한 음식을 조리하듯 문자로 다양한 책을 요리하는 일이다.

사람마다 먹고 싶은 것이 다 다르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 읽고 싶은 것이 다 다르고, 읽을 수 있는 것이 다 다르다. 책을 읽고 맛보는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책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책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편집은 요리다. 편집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다양한 맛과 기쁨을 선사하는 부지런함이다. 오랜 훈련과 고민을 통해 쉬지 않고 책을 만들어내며, 사람이 매끼니 각양각색의 음식을 먹듯 때마다 다종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힘쓰는 근면함이다. 편집은 굽고 찌고, 끓이고 삶고, 지지고 볶고, 달이고 졸이고, 절이고 삭혀서, 책의 맛을 완성시키는 일이다.

편집은 밥을 못 먹는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죽을, 쓴 약을 삼키고 난 사람에게는 달콤한 엿을 건네는 사려 깊음이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꺼리는 사람을 위해서는 부드러운 책을, 딱딱하고 엄격한 책을 독파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곁들여 읽을 가볍고 달콤한 책을 준비하는 상냥함이다. 편집은 최적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렇게 찾은 책의 황금 ‘레시피’다.

유현종 포럼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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