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코스프레와 인종차별은 구분해야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코스프레와 인종차별은 구분해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8.14 14:30
  • 호수 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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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졸업사진으로 매년 큰 화제를 모았던 의정부고 학생들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학생들은 최근 졸업사진을 찍으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나의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했다. 

관짝소년단은 방탄소년단과 관짝의 합성어로, 춤을 추며 상여꾼 역할을 하는 가나의 한 상조회사 직원을 가리킨다. 가나를 포함한 서아프리카에서는 고인이 천수를 누리고 간 경우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를 치르는 대신, 관을 어깨에 올린 채 밝고 쾌활한 분위기에서 춤을 추며 장례를 치른다. 이를 ‘코핀 댄스’(관짝춤)라 부르는데 이를 전문으로 하는 상조회사가 있다. 이중 한 회사가 코핀 댄스를 추는 모습이 유튜브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의정부고 학생들은 코핀 댄스를 추는 상조회사 직원들의 복장을 하고 모형 관을 제작해 그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패러디하면서 큰 웃음을 선사했다. 문제는 이를 본 가나 출신 한 방송인이 자신의 SNS에 관짝소년단 패러디는 ‘블랙페이스’라며 인종차별이라 비판하면서 발생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흑인이 아닌 배우가 흑인 흉내를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은 물론 흑인의 두터운 입술을 강조하기 위해 입술을 과장해 표현하는 무대 분장이 유행했다. 이를 블랙페이스라고 하는데 1960년대 미국 민권운동(民權運動)의 영향으로 인종차별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고 금기시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종차별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짝소년단 패러디가 ‘코스프레’(유명 캐릭터나 인물의 복장과 외형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스프레는 최대한 정교하게 따라하는 것이 목적인데 동양인이 흑인으로 구성된 관짝소년단을 흉내내기 위해선 얼굴에 검은색 칠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비하의 목적이 전혀 없고 사실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 만약 맥락 없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을 했다면 그건 명백한 인종차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정부고 학생들은 누가봐도 패러디를 통한 재미를 주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코스프레를 한 것이다. 

2004년 개봉한 화이트칙스라는 작품이 있다. 두 명의 흑인 FBI요원이 금발의 백인여성으로 완벽히 분장하고 악당을 소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흑인들이 백인 금발 여성을 비하하고 인종차별을 한 것인가. 

인종차별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다만 전후 맥락을 따지지 않고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비판 역시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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