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요청 인터뷰] 가수 조영남의 늙지않는 법
[독자요청 인터뷰] 가수 조영남의 늙지않는 법
  • 관리자
  • 승인 2006.08.2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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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지 말고 지갑을 열라”

젊은이들 이야기 다 들어 주고 맞장구 치며 대화를

취미생활하며 혼자 놀 줄 알아야 짱!
늙지 않으려면 재미있게 살려고 해야


1945년 해방둥이인 조영남은 작년에 환갑을 지냈다. 그래서인지 그가 부른 ‘은퇴의 노래’ 첫 대목이 좀 더 실감 나게 들린다. ‘제발 나같이 오래 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몸은 비록 최희준 선배지만 마음만은 H.O.T랍니다…’

 

조영남은 몇 년 전부터 스스로를 ‘늙은이’ ‘노인네’라는 말로 지칭했다. 인터뷰를 위해 집에 찾아간 기자에게 “노인네를 찾아 주어 고마워”라고 말하거나, “언제든지 노인네가 필요하면 놀러와”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고도의 위장전술이었다. 원래 늙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늙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노인네라고 칭한다. 그래서 정말 그의 말대로 ‘늙었나?’하고 보면 ‘노는 모습’은 딴 판이다. 

 

영동대교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청담동 거실에서 태극기 그림을 그리다 지루해지면 전문가용 힐리스(바퀴달린 신발)를 신고 거실 곳곳을 날렵하게 달린다. 그러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노인네가 집에서 바퀴달린 신발을 신고 논다! 손자가 있어 함께 놀아줄 요량으로 바퀴신발을 신었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데 혼자 사는 노인네가 집에서 바퀴신발을 신고 논다?’ 평범한 사람의 개념으로는 망령이 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논다. 

 

그를 찾는 전화도 한두 건이 아니다. 전시일정이나 출판 등의 업무용 전화도 있지만, 특히 여자들이 ‘오빠’ ‘아저씨’하며 전화를 걸어온다. 지금까지 두 번의 결혼을 포함해서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까지 그가 연애한 여자는 줄잡아 7, 8명. 20대에서 70대까지 친하게 지내는 여자친구들이 많다고 밝히기를 꺼려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가 좋아하는 여자 취향은 ‘젊고 예쁘고 착하고 돈 많은’ 네 가지 조건을 구비한 여자. 이런 말을 하면 야유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살며 하도 많은 욕을 먹어 요즘은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 네 가지 조건 중 돈 많은 여자는 제외시켰다고 한다. 아주 소박하게 ‘젊고 예쁘고 착한’ 세 가지만 고집한다는 것.

 

이쯤 듣고 보면 입버릇처럼 ‘늙었다’는 건 엄살이라는 혐의가 짙다. ‘늙었다’는 말로 위장전술을 펴며 실은 그 반대의 행동을 해오고 있는 것. 그렇다면 그가 노리는 것은 뭘까? 플러스알파다. 늙은 사람이 젊다고 주장하지만 행동이 늙은이 같다면 추락의 속도가 깊다. 하지만 늙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행동은 젊은이답다면 덤으로 얻어지는 게 있다.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사실 조영남의 개념엔 노화가 없다. 그는 진정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 30대와도 어떻게 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건 자꾸 무얼 가르치려 드는 것이라고 생각돼요.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 안하는 게 중요한데 마구 말을 하고 싶어 해요. 노인네가 자신이 아는 걸 자꾸 얘기하면 젊은 친구들이 싫어해요. 젊은 친구들이 안 놀아 줘요. 거꾸로 물어야 해요. 아는 것도. ‘나 이거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요.

 

자신이 아는 늙은이들은 “100% 말을 많이 한다”는 그는 떠드는 것 못지않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을 참는 비상한 노력이 노인들에게 필요하다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노인네들은 젊은이들 앞에서 혀를 깨물어서라도 참아야 해요. 그렇게 훈련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아는 척 하는 게 잘 나서가 아니에요. 단지 오래 살아서 주워들은 것이 많을 뿐이에요. 그걸 젊은 애들에게 왜 얘기를 합니까? 어차피 걔네들도 내 나이되면 다 알 텐데. 

 

그는 노인네가 말이 많으면 젊은이들이 옆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무서워서. 한번 시작했다 하면 언제 말을 끊을지 알 수 없기 때문. 그러니 젊은이들의 결론은 ‘될 수 있는 대로 옆에 가지 말아야지’ 하게 된다는 것. 노인들을 보면 슬슬 피하게 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고부갈등도 이런데서 비롯됩니다. ‘며느리가 싸가지가 없다’하는데 노인네가 싸가지가 없는 건 모르고 며느리만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며느리가 싸가지가 없으면 노인네도 싸가지가 없는 겁니다. 피장파장이에요.  

 

어떻게 하면 잘 늙을 수 있을까? 그는 적당히 늙은이다워야 하고 적당히 늙은이답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지 부연설명을 부탁했다.

 

-가령 내가 가수다, 그렇다면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적당한 때에 뒤로 물러서 주는 것, 그걸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히 늙은이다운 것입니다. 자리에 연연하며 전전긍긍한다면 그것은 보기 흉한 모습일 뿐이지요. 그렇게 되면 꼭 늙은이 취급을 당하게 됩니다.

 

적당히 늙은이답지 않아야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결코 젊은 애들보다 못해서는 안 되는 것,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난 늙었으니까’ 나이를 핑계로 비비대거나 어영부영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눈살부터 찌푸려지게 됩니다.

 

조영남은 노인네들에게 또 중요한 것은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인이 될수록 이것이 힘들어지는데 미리부터 이런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한다. 낚시를 하거나, 책을 열심히 보거나, 논문을 쓰거나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찾아서 혼자 할 수 있어야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노인네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답은 아주 명쾌했다.

 

-입을 열지 말고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 ‘저 새끼 자기는 돈이 있으니까’ 할까봐 누구에게나 말을 못하는데, 열 주머니가 없으면 ‘셧업(shut up)’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인이 될수록 외롭고 사랑을 더 갈구하게 되는데 사랑받는 노인이 되려면 젊은 애들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 됩니다. 내가 떠들려고만 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 다 좋아합니다.

 

노인네가 젊은 애들을 보기만 하면 계속 “인생이 어떻고 어렸을 때는 뭐를 해야 하고 어른을 대할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하고…”를 읊조리면 절대 상대가 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야, 재미있다, 신난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됐냐?” 맞장구를 쳐주고 박수를 쳐주면 금방 친구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만 하면 10대나 20대의 여자들도 다 노인 앞에 오게 된다며 딸 친구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자랑한다.      

 

-난 현재 직함이 많아요. 재수교 교주, 전국푼수자협의회대표, 재미스트 대표, 제2사랑당 당수… 재수가 왜 중요하냐? 아무리 실력 있는 놈도 재수 좋은 놈 앞에서는 꼼짝 못해요. 노력을 백날 해도 재수 좋은 놈 앞에서는 ‘꼼짝 마’가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재수가 좋아질까, 연구를 해야 해요. 방법은 있어요. 재수교 교주에게 뇌물도 바치고 하면(웃음).

 

늙지 않기 위한 대책 중의 하나가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조영남은 인터뷰를 마쳤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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