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다시 위기 맞은 영화산업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다시 위기 맞은 영화산업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8.21 13:24
  • 호수 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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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일 진행 예정이었던 ‘카일라스 가는 길’ 시사회가 취소됐음을 안내드립니다.”

지난 8월 18일 문자를 수신하자마자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시사회가 취소되니 겨우 재기의 몸짓을 했던 영화계가 다시 침체의 길로 들어서는 건 아닌지 우려됐기 때문이다.

시사회가 줄줄이 멈춰 선 건 지난 3월에 이어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다. 한국영화인 ‘국제수사’, ‘리메인’, ‘후쿠오카’, ‘기기괴괴 성형수’를 비롯해 올여름 최대 기대작 ‘테넷’, 그리고 ‘아웃포스트’ 등 8월 셋째 주 예정된 시사회가 줄지어 취소됐다. 이중 일부 영화는 개봉까지 연기하기도 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칠곡 가시나들’(2019)을 잇는 ‘노인 영화’로 기대를 모으던 ‘카일라스 가는 길’도 9월 3일로 개봉이 한 주 연기됐다. 

최근 문화계는 베이비부머들의 노인 인구 편입으로 구매력이 강해진 시니어를 겨냥하고 있다. ‘트로트’ 외에도 노인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톱모델 한혜진이 MC를 맡아 차세대 시니어모델을 선발하는 MBN의 ‘오래 살고 볼일’도 이런 맥락에서 제작된 것이다. 8월 20일 개봉한 ‘69세’가 노인 대상 성폭력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 올린 것도 문화계에서 달라진 시니어들의 위상 덕분에 가능했다.

그런데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노인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는 매년 개최되는 서울노인영화제의 청년 부문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제작진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인의 입장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에서 만들기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단, 다큐멘터리는 달랐다. 이별을 앞둔 노부부의 마지막을 있는 그대로 담아 전 세대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 ‘님아…’와 가난한 시대에 배움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여성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본 ‘칠곡 가시나들’은 큰 울림을 선사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84세 이춘숙 어르신의 성지순례길을 기록한 ‘카일라스…’ 역시 기존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메시지를 기대케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극장가가 다시 움츠러들 것으로 예상돼 관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게 됐다.

‘카일라스… ’ 외에도 많은 영화와 이를 만든 제작사, 그리고 극장들은 또 다시 힘겨운 길을 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비록 이 고비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한국 문화계를 이끄는 견인차답게 끝까지 버텨내 꿋꿋이 일어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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