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오경아
[백세시대 / 금요칼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오경아
  •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0.08.28 14:11
  • 호수 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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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발을 다쳐 깁스를 한 탓에

정원은 돌봄을 못받고 정글이 돼

헌데 야생돌물이 찾아오면서

정원은 그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식물들이 잘 버티는 게 신기해

수년 전부터 영화에 ‘좀비’라는 설정이 많아져서 내심 속으로 이상하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좀비 출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흉측한 몰골의 인간이 영화 내내 등장해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싫지만, 죽어도 죽지 않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전염시키는 그 공포가 오싹하기 때문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조금 전까지도 부둥켜안고 있던 ‘우리’가 감염이 되고 나면 내가 살기 위해 죽여야 하는 좀비가 되는 설정은 정말 영화지만 너무 잔혹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2020년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이 좀비 영화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름도 낯선 왕관을 닮았다 하여 지어졌다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더니,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악몽을 계속 꾸게 하는 중이다. 

사실 인류에게 집단감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구가 급격히 늘수록 호모사피엔스 종 사이에 번지는 집단감염도 늘어갔다. 대표적인 사건은 1348년부터 1353년에 있었던 5년간의 흑사병 사태다. 유럽,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를 휩쓴 검은 쥐의 몸에 사는 벼룩이 사람에게 옮겼던 이 병으로 약 2억명의 사람이 죽었고, 유럽 인구가 반 이상으로 줄게 되는 엄청난 일이 생겼다. 문제는 이 흑사병이 5년간 창궐하고 말끔히 끝이 난 것이 아니고 그 이후 2차 대유행, 3차 대유행으로 이어지면서 19세기 후반까지 여전히 인간의 삶을 위협했다는 점이다. 집단감염이 결코 쉽고 간단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건이 아니고, 그래서 이 2020년 코로나19의 위력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짐작이 마음을 더 짓누른다. 

1차 흑사병이 겨우 한풀 꺾일 즈음,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조반니 보카치오라는 대문호가 한 권의 책을 내놓는다. ‘데카메론’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흑사병이 도는 시기, 젊은 남녀 10명이 플로렌스를 떠나 외곽 전원의 대주택에 병을 피해 보름 동안 머물렀던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종의 ‘자가 격리’ 중에 매일 밤, 한 사람씩 이야기의 주제자가 되어 각자가 만들어낸 유머, 해학, 교훈이 담긴 100개의 이야기를 담은 글인 셈이다. 이 데카메론이 시대적 상황 탓인지 최근 영어권 국가들에서 다시 인기를 누리고 중이다. 그런데 유럽에 데카메론이 있다면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8세기에서 14세기 사이의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모은 ‘1001의 아라비안나이트’가 있다. 사랑을 믿지 않는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자마자 죽이는 일을 저질렀고, 재물처럼 바쳐진 셰에라자드라는 새로운 왕비가 살아남기 위해 매일 밤 재미난 이야기로 왕을 달래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는 설정이다. 

이상한 것은 이 두 책의 설정이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 이야기들은 그냥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교훈을 담고 있다. 이 두 책의 설정이 이러한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코앞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함 속에 산다. 비약하자면 우리의 삶 자체가 흑사병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자가 격리자의 삶이기도 하고, 매일 처형을 늦춰야 했던 셰에라자드의 삶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 안에서도 삶의 유머와 해학과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움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두 책 모두 담고 있던 셈이다. 

2020년은 세계적인 공포 외에도 나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의 연속이다. 집중 호우에 차량이 물에 잠겨 느닷없이 폐차했고, 가볍게 발을 헛디디는 사건이 벌어져 6주 이상 발을 쓰지 못하고 깁스를 한 채 삼복더위를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계절은 길고 긴 장마를 지나 폭염 무더위로 옮겨갔다. 손을 보지 못한 속초집 정원은 식물들이 우거져 정글이 돼 가는 중이다. 아직은 다리의 힘이 온전치 않으니 그저 바라볼 수밖에 달리 방법은 없다. 무엇보다 걱정은 관리가 소홀한 정원에 병충해가 급속히 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 우거짐 속에 내가 생각하지 못한 현상이 찾아왔다. 내 발걸음이 줄어든 정원에 부쩍 많은 야생의 동물들이 나타나면서 아마 천적이 천적을 부르는 힘 탓인지 스스로 적당한 균형 속에 정원의 식물들이 오히려 작년보다 잘 버티는 것이었다. 신기할 따름이다.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이 지구에서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며 오염되고 훼손된 것을 복구하고 정화하는 힘이 있다. 그걸 우리는 ‘힐링’이라는 유행어처럼 쓰고 있을 뿐이다. 그간 우리 인간이 잊고 지낸 이 힐링의 메시지가 어쩌면 이 어려운 코로나19 시대에 다시 발현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이 힘들어지고, 서로를 좀 더 배려해주지 않으면 나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양보와 조심의 시대를 잘 건너가다 보면 좀 더 성숙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볼 내면의 시간을 가질 때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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