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 애써 발굴한 민간기업 노인일자리 기피…노인적합직종 외국인에 뺏길 판
코로나 여파, 애써 발굴한 민간기업 노인일자리 기피…노인적합직종 외국인에 뺏길 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9.25 10:30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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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근로시간 적은 재정지원 일자리 늘며 민간 노인일자리는 구인난

외국인으로 대체 채용 늘어… “장기화되면 양질의 일자리 사라질 듯”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장기화 되면 노인적합직종 일자리들이 외국인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빨라질 것 같아요.”

충북 A지회는 최근 지역 내 한 골프장으로부터 잔디를 보수하고 벙커를 정비하는 업무를 맡아줄 노인인력 20명의 취업알선을 의뢰받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끝내 1명도 연결해주지 못했다. 코로나19 여파와 이로 인해 늘어난 정부 재정지원일자리(이하 재정일자리)와 노인일자리 때문에 구직자가 대거 줄어든 것이다. A지회 관계자는 “한번 늘린 정부 일자리는 줄이기가 힘든데 이로 인해 애써 발굴한 민간기업의 노인일자리가 대폭 줄어들 것 같아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노인을 우선채용해 왔던 민간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직자가 더 많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민간기업 취업보다 노인일자리와 재정일자리 참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

노인취업을 지원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원인을 크게 3가지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하는 어르신들의 구직 심리가 줄어든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지회 노인취업센터의 경우 매일 한두 명 이상이 구직을 위해 방문해 각종 상담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올해에는 방문 상담이 어려워지면서 재난지원금 등 정부 지원금과 기초연금으로 최대한 버티면서 내년을 도모하는 노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경기 B지회 관계자는 “구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하면 코로나19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내년에 하겠다고 말하는 어르신이 많다”면서 “더군다나 일하고 싶다고 새로 찾아오는 사람도 적어 기업과 연결해주기 힘들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추경을 통해 재정일자리와 노인일자리를 대폭 늘린 것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정부는 실업율을 낮추기 위해 공공기관에 재정을 투입해 일시적으로 재정일자리를 대거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한국환경공단의 경우 아파트 단지에서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바르게 하도록 홍보 및 교육하는 도우미 일자리를 1만여개 만들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4시간을 일하면 매월 8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는데 18세 이상이면 참여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일자리를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면서 60대 이상 고령자들이 대거 몰린 것이다. 

현재 경비와 미화업무로 대표되는 노인적합직종 민간일자리의 경우 최저임금 이상을 적용해 많게는 월 180만원 이상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일이다 보니 노인일자리나 재정일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편이다. 이로 인해 수입은 적더라도 외부활동이 적은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커진 것. 또 코로나19 여파로 일하는 시간은 적지만 30만원(상품권 포함) 가량을 받는 노인일자리로 시선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다. 기초연금과 합치면 약 60만원이 되기 때문에 지출을 줄이면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베이비부머 세대 기술직 은퇴자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이 단순 업무 일자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도 있다. 

D지회 관계자는 “재정일자리와 공공근로가 많이 늘어나면서 노인들이 돈을 적게 벌더라도 쉬운 일자리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올해 말까지는 구인난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9월 20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2020년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성과평가 결과’에서도 정부 일자리사업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정보원은 노인일자리가 너무 많다 보니 참여자 수를 맞추기 위해 반복 참여가 일상화됐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직접일자리 사업은 한 사람이 2년까지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2년을 넘으면 반복 참여로 보고 제한한다. 하지만 노인일자리 사업의 반복 참여율은 42.6%에 이른다. 고용정보원은 평가서에 “노인일자리의 양적 확대는 충분히 이뤄졌으니 적정 규모 운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노인일자리는 2017년 44만명에서 올해 74만명으로 불어났다. 이를 위해 투입된 세금은 2017년 5223억원에서 올해 1조2015억원으로 늘었다. 고용정보원은 교통정리, 쓰레기 줍기 등의 노인일자리가 넘치다 보니 오히려 참여인원을 모집하는 게 힘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현장에서는 애써 확장해놓은 노인적합직종 민간일자리가 외국인 노동자들로 대체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노인들을 대거 채용했던 골프장과 농가에서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30~40대가 많은데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높은 업무효율성을 보인다. 단기비자로 입국해 주기적으로 인원을 교체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농가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애써 발굴해 놓은 일자리들을 전부 외국인들에게 빼앗기면 정작 돈이 필요한 노인들이 일을 찾고자 할 때 이전보다 더 큰 구직난에 시달릴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한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노인일자리는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양적 확대에만 집중하다 보면 노인적합직종으로 발굴한 민간일자리들이 사라질 수 있다”면서 “노인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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