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성범죄 혐의자 신상 폭로하는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검거… ‘사적 처벌’은 안돼
[백세시대 / 뉴스브리핑] 성범죄 혐의자 신상 폭로하는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 검거… ‘사적 처벌’은 안돼
  • 배지영 기자
  • 승인 2020.09.25 13:31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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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등 피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논란이 된 ‘디지털 교도소’의 운영자인 30대 남성 A씨가 베트남에서 검거된 가운데 경찰이 A씨에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등을 적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9월 23일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와의 공조를 통해 22일(현지시간) 오후 6시쯤 베트남 호치민에서 30대 남성 A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A씨는 올해 3월부터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와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운영하며 성범죄와 아동학대 범죄자 등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게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실제 범죄와 무관한 이들의 신상도 일부 공개돼 있다. 

A씨 검거는 경찰이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한 지 20여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경찰청이 디지털 교도소 전담 수사기관으로 지정한 대구지방경찰청은 8월 31일 A씨가 해외에 체류 중인 것을 확인하고 인터폴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A씨가 지난해 2월 출국한 것으로 확인되는 캄보디아의 인터폴과 공조 수사를 개시했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청 인터폴계는 지난 7일 캄보디아에 머물던 A씨가 베트남으로 이동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베트남 공안부에 설치된 코리안데스크에도 A씨에 대한 검거를 요청했다. 2015년 12월부터 운영 중인 베트남 코리안데스크는 베트남 공안 4명으로 구성된 한국인 사건 전담부서다. 

경찰청은 “베트남은 인터폴 적색수배를 근거로 범죄인 체포가 가능한 국가 중 하나”라며 “특히 디지털 교도소 관련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베트남 공안부 측에서 이례적으로 적극 조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고려대 학생 B씨가 지난 9월 3일 오전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B씨가 누군가에게 지인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달라고 요청했다며 B씨의 사진, 학교, 전공, 학번, 전화번호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한 바 있다. 

B씨는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링크를 눌렀는데 그 때 해킹을 당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범죄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할 중대한 범죄인만큼 부당하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혔을 때 입는 피해 또한 심대하다. 누군가의 성범죄 혐의를 공론화할 때는 철저한 사실 확인이 전제돼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가릴 역량이 부족한 채 정의감만 앞세워서는 성범죄 근절이라는 대의마저 손상시킬 수 있다. 특히 신상정보 공개라는 방식은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징벌효과를 가져온다. 

사법절차를 통해 처벌받은 성범죄자라 하더라도 별도의 심사를 거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신상을 공개하는 이유다. 검증 부족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거나, 신상이 잘못 공개될 경우 온라인의 파급력으로 완전한 피해 복구가 어렵다. 

죄 지은 사람에 대한 처벌은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이다. 무분별한 인터넷 폭로 문화, 여론 몰이식 낙인찍기로 억울한 희생자를 낳아서도 안 된다.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신상공개 행위에 대해서는 무거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사회현상으로서 ‘디지털 교도소’가 시사하는 바는 상당하다. 성범죄자 등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사법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 앞에 평등한 진짜 정의로운 사회는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시대적 가치다. 법치는 그 최소한의 장치이자 최후의 보루다. 비록 현재의 법치에 허점이 있다 하더라도 작은 틈을 허락해 ‘사적 복수’가 둑 터진 듯 횡행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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