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유병장수(有病長壽)냐 무병장수냐 / 김광일
[백세시대 / 금요칼럼] 유병장수(有病長壽)냐 무병장수냐 / 김광일
  •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노인의료센터장
  • 승인 2020.09.25 14:14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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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 노인의료센터장

고혈압‧당뇨병 등 진단받고도 
열심히 치료받고 건강관리 힘써
9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 많아

인터넷 등 검증 안 된 건강 정보에
현혹되지 않게 마음 다잡아야

질병이 없어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에 고혈압 혹은 당뇨병을 진단받으면 크게 실망한다. 일부는 그럴 리 없다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근 무리를 해서 혈압이나 혈당이 일시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생각한다. 운동이나 식사를 조절하면 다시 정상이 될 것이라 믿고 처방약을 복용하지 않기도 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병이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은 당연할 듯한데, 그렇다면 이러한 질병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장수의 희망은 사라지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은 9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수행한 ‘장수인’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장수 연구 전문가인 미국 보스턴 의과대학의 토마스 펄(Thomas Perls) 교수는 지난 2003년, 장수인들은 당연히 노화성 질환이나 암, 심혈관 질환 등에 걸리지 않아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상식을 깨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는 97세에서 119세의 장수 노인 42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장수 노인의 38%는 80세 이전에 고혈압, 당뇨병, 골다공증, 파킨슨병, 심혈관질환, 뇌졸중, 암 등의 노인성 질환을 진단받았으나 그 이후로도 20년 이상을 더 생존했다. 또한 43%의 장수인은 노인성 질환이 80세 이후에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90세 이상의 수명을 누리는 장수인 중 단지 19%만이 노인성 질환 없이 무병장수를 누리고 있다. 반면, 장수 노인의 80%는 유병장수 했다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성 질환으로 일찍 사망하는데, 어떻게 장수인들은 노인성 질병을 진단받고도 오래 살 수 있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질병에 걸려도 회복하거나 치유되는 능력에 개인 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을 진단받고도 완치되거나 잘 조절하면서 장수를 누리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회복이나 치유와 관련된 좋은 유전적 특성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질병을 잘 이겨내는 심리적 특성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과 같은 위중한 진단을 받았더라도 “오래 살다 보니 역시 병이 생기네요. 잘 치료받으면 좋아지겠지요” 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거나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요? 무엇을 잘못해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낙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생에서 누구도 피해 나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이왕 이렇게 된 것 한 번 제대로 치료받아보자고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에 동참하게 되면 보다 좋은 결과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노인성 질병으로 진단받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혹은 암을 진단받고 난 후 지금까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너무 바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또는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이나 영양 섭취 등에 열심히 노력을 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질병에 걸리기 전보다 더욱 열심히 몸을 관리하면서 체중도 줄고 근육량도 많아져 운동능력이 개선되는 등 전반적인 건강 수준이 좋아지게 된 케이스다. 특히, 최근에는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불치의 병이라 생각됐던 많은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됐다. 치료약이나 수술의 부작용도 훨씬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열심히 치료받고 질병 진단을 계기로 더욱 열심히 건강관리에 힘쓴다면 유병장수(有病長壽)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런데 유병장수를 위해서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질병에 걸렸다고 하면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주는 자칭 ‘전문가’가 너무 많아 이들이 전해주는 검증되지 않은 건강정보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최근에는 인터넷과 케이블 TV 등을 통해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건강정보를 접하게 된다. 또한 큰 병에 걸렸다고 하면 주위에서 효과를 보았다는 막연한 전언을 근거로 효과가 확실한지에 대한 검증 없이 새롭고 매혹적인(?) 치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공개되고 있는 21세기에 숨겨진 건강비법이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치료 효과가 뚜렷한 새로운 치료 방법이 나왔다면 당연히 병원에서 약이나 식품 등을 먼저 권고할 것이라는 상식적인 내용을 염두에 두고 약해진 마음을 다잡아 질병 치료와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에 몰두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현재 무병장수보다는 유병장수가 더 흔하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질병이 있다고 실망하거나 포기할 필요 없이 잘 조절하고 관리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면 건강한 노년의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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