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미 대사에게 바라는 것
[백세시대 / 세상읽기] 주미 대사에게 바라는 것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10.16 13:59
  • 호수 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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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영국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 한 여성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디스 카벨. 그녀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다음으로 영어권 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간호사다. 런던뿐 아니라 벨기에 브뤼셀, 호주 멜버른, 뉴질랜드의 리프턴에는 카벨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고, 영국·아일랜드·캐나다·미국·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는 카벨의 이름을 기리는 간호사학교나 병원이 있다. 

카벨은 영국 노리치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30세에 간호사 수련을 받았고 1907년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의 간호학교 원장으로 임명됐다. 1914년 8월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한 직후 적십자병원으로 전환한 자신의 학교에서 부상병들을 돌봤다. 그때 점령된 도시에 남게 된 영국 군인과 프랑스 군인 200여명을 독일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네덜란드로 피신시키거나 연합군 진지에 합류시키는데 일조한 혐의로 1915년 8월 5일 독일군에게 반역죄로 체포돼 10월 12일 총살 당했다. 

카벨은 투옥 전 영국인 성공회 사제에게 “애국주의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누구를 향해서건 증오도 비탄도 품지 않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디스 카벨의 기념비는 민관 공동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카벨 기념비 건립을 위한 공공기금을 모았고 웨스트민스터시는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카벨의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을 때 가해 당사국인 독일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카벨의 위대한 희생과 업적을 기리고 칭송하고 홍보해도 독일은 한 마디의 항의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독일의 태도와 달리 중국은 180도 다른 행동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의 남성보컬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는 밴플리트상을 수상하면서 한 소감에 대해 발끈했다. 이 상은 해마다 한미 관계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어진다. 

중국 네티즌은 “올해가 한국전쟁 70주년이라 더 의미가 짙다.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 및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BTS에 말과 관련해 “중국을 무시했다. 미국의 침략과 아시아에 대한 간섭을 무시하는 발언”이라며 방탄소년단이 모델로 등장하는 한국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거론했다. 삼성은 지레 겁을 먹고 스마트폰과 이어폰의 방탄소년단 한정판 관련 게시물을 자사 누리집과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내렸다.

전쟁을 함께 치른 동맹국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기념하고 격려하는 일련의 의식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승전·패전국은 역사상 한 곳도 없다. 그거야 말로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더욱이 6·25는 북한의 침략으로 일어났고 중국은 대의명분 없이 단지 침략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중국 네티즌보다 더 가볍고 신중하지 못한 멘탈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최근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한국은 70년 전에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사랑하지도 않는데 동맹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거나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는 힘겨루기를 하는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대고 지속적으로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해 속내를 결코 내보이지 않아야 할 외교관으로서 너무나 쉽게 답안지를 내보인 꼴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한미 동맹의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런 가운데 정부 고위층의 이 같은 부적절한 언행은 이를 부추긴 셈이다. 이 대사는 이디스 카벨을 대하는 독일과 BTS의 수상소감에 발끈하는 중국의 태도를 비교해 앞으로 주미 대사로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판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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