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조금 느린 배송도 괜찮아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조금 느린 배송도 괜찮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0.23 13:40
  • 호수 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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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초등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단연 ‘산타 할아버지’일 것이다. 실제로는 부모님이 준비하는 선물을 산타 분장을 한 사람이 전달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빨간 옷을 입고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늘 설렌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이는 누굴까. 누가 뭐라 해도 ‘택배 아저씨’일 것이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제한 상품을 안전하게 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택배 기사님’이야 말로 21세기의 산타클로스다.

필자 역시 추석 직후 이사를 하면서 청소기, 밥솥 등 생활가전을 비롯해 다양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얼추 숫자를 세보니 20개가 넘는 물건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문제는 연휴 기간 물량이 몰리면서 일부 택배사를 통해 오는 물건의 배송이 지연된 것이다. 이사를 8일 정도 앞둔 시점에 구매해서 여유있게 받을 줄 알았지만 막상 이사 3일 전까지 냄비세트 등 부피가 큰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다.

결국 택배사에 재촉 전화를 걸었고 상담원은 거듭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언제 도착할지 확언해줄 수는 없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잠깐 화가 치밀어오를 뻔했지만 이를 침착하게 억누르고 빠른 배송을 부탁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물건이 제때 다 도착해서 차질없이 이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 여러 명의 택배 기사님들이 과로사로 스러져갔다. 코로나19 여파로 배송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업무량 역시 늘어났고 하루에 2~3시간밖에 못자고 다시 일터에 나섰다가 화를 입은 것이다. 하루 배송,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 점차 빨라지는 속도 경쟁도 택배 기사님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청소기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 보통 미국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1차적으로 ‘배대지’라고 불리는 미국 내 배송대행지로 물건을 발송하고 그곳에서 다시 한국으로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구매한 회사 홈페이지에서 물류 흐름을 볼 수 있는데 주와 주를 건너면서 거의 10일 가까이 이동했다. 배대지에서 다시 한국으로 오는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근 한 달 가까이 걸렸지만 물건을 받았을 때 기쁨은 똑같았다. 하루 만에 받든 한 달 만에 받든 그 반가움은 다르지 않았다. 

식품을 제외한 모든 제품은 굳이 빨리 받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 이상 걸려도 그 방식에 익숙해진다면 괜찮다. 필자 역시 느린 배송에 적응했다면 이사 한 달 전에 구입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느린 배송이 택배 기사님들의 업무과중을 줄일 수 있다면 적극 찬성이다.

‘살고 싶다’는 택배 기사님들의 간곡한 요청에 적극적으로 귀를 귀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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