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 왕궁 파헤치는 도굴꾼 이야기 실감나게 전개
영화 ‘도굴’, 왕궁 파헤치는 도굴꾼 이야기 실감나게 전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0.30 14:38
  • 호수 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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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도굴꾼의 이야기를 범죄오락물로 실감나게 풀어내며 한국판 하이스트 무비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도굴꾼의 이야기를 범죄오락물로 실감나게 풀어내며 한국판 하이스트 무비의 탄생을 기대케 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성계가 쓰던 전설의 칼 도굴 과정… 고분‧왕릉 세트 등 세밀한 구현

‘세종대왕 어진’ 등 가상의 유물 보는 재미… 한국판 오락물 가능성 제시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 중인 ‘전어도’(傳御刀). 태조 이성계가 사용했던 칼로 조선 건국과 관련된 전설이 야사로 전해지며 ‘조선판 엑스칼리버’로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검은 이씨 왕조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다하고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현

재 남아 있는 이 칼은 태종 이방원이 복원해 선물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전어도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면. 그것도 서울 강남 한복판인 ‘선릉’에 보관돼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발칙한 상상력에 살을 붙인 영화 한 편이 11월 4일 개봉한다. 한국판 하이스트 무비(치밀한 계획을 짜 무언가를 강탈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범죄오락물)를 표방하는 영화 ‘도굴’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천재 도굴꾼 ‘강동구’(이제훈 분)가 황영사(가상의 사찰) 9층 석탑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훔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수억원을 호가하는 불상을 훔친 후 이를 마트에서 구매한 것마냥 검은 봉지에 넣은 채 구매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마치 귀한 불상이 나타났다는 걸 홍보라도 하는 것처럼 서울 곳곳의 골동품 상가를 활보한다.

그리고 이 소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문화재 수집가인 진 회장(송영창 분)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의 심복인 윤 실장(신혜선 분)에게 불상을 입수하라고 지시한다. 강동구를 만나 불상을 입수한 윤실장은 도굴 능력에 감탄하고 그에게 도굴 임무를 제안한다. 이를 수락한 강동구는 또 다른 조력자인 ‘존스 박사’(조우진 분)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임무를 완수한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진 회장에게 접근하기 위한 강동구의 큰 그림이었다. 고분 벽화 도굴을 통해 진 회장의 신뢰를 얻은 그는 선릉에 전어도가 보관돼 있다는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선릉 보수 공사 전에 이를 훔쳐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진 회장은 강동구가 미심쩍었지만 도굴을 의뢰하고 대신 자신의 또 다른 심복을 붙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이후 강동구는 인간굴삭기라 불리는 ‘삽다리’(임원희 분)까지 영입해 본격적인 선릉 도굴에 나선다. 하지만 황영사 불상 도난 사건 때부터 강동구를 주시해왔던 오반장이 냄새를 맡고 그의 계획을 저지하고 나서며 강동구의 팀은 큰 위기를 겪는다.  

이번 작품은 앞서 성공했던 국내‧외 범죄오락물의 장점을 잘 조합했다. 우리 문화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선 ‘인사동 스캔들’이 떠오르고, 동료를 모아 땅굴을 파고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으로 범죄를 완성하는 설정은 ‘오션스’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또 시종일관 시건방지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강동구와 지적이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는 윤 실장은 영화 ‘타짜’의 고니와 정마담 커플을 닮았다. 

여기에 도굴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더해 개성을 살린다. 중국으로 넘어가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째로 털어오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거대한 벽화가 훼손되지 않도록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타일처럼 잘라내는 모습은 사실감을 높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영화의 후반부를 책임지는 선릉 도굴 장면도 인상적이다.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선릉을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만큼 세트 제작과 실제 선릉 촬영을 병행하며 세밀하게 구현해냈다. 5톤 트럭 100대 규모의 흙이 동원됐을 정도로 사실성을 강조했다. 직접 먼지를 뒤집어쓰고 흙탕물 속에서 전동드릴, 해머 등 장비를 동원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잘 전달된다. 또 ‘세종대왕 어진(왕의 초상화)’을 비롯해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 있을 법한 가상의 유물들을 재현해낸 상상력도 인상 깊다.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에도 옥에 티가 여러 군데 보였다. 강동구를 쫓으며 극초반 큰 분량을 차지했던 오반장이 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1시간 이상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다 선릉 도굴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뜬금없이 등장해 의아함을 자아낸다. 2시간이란 짧은 시간 동안 긴박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지면서 곳곳에 수많은 궁금증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우리 문화재를 소재로 한 하이스트 무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조선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반만년의 역사 속에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사라진 문화재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전어도의 전설에서 알 수 있듯 각 문화재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역사가 짧은 미국의 경우 하이스트 무비 대부분이 금괴나 보석을 훔치는 데 집중하는 반면, 이 작품이 제시한 한국판 하이스트 무비는 더 풍부한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다. 특히 영화 마지막 장면은 2편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빛났다. 강동구를 연기한 이제훈을 비롯 신혜선, 조우진, 임원희 등 주‧조연 배우들은 군더더기 없는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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