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흰 밤 검은 낮’ 전, 한국전쟁 70년의 상흔, 회화·사진·영상에 담아
경기도미술관 ‘흰 밤 검은 낮’ 전, 한국전쟁 70년의 상흔, 회화·사진·영상에 담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1.13 14:15
  • 호수 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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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그들의 자녀세대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사진은 박완서의 '나목'을 그래픽노블로 재탄생시킨 김금숙 작가의 '나목'.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부터 그들의 자녀세대에게 남아 있는 상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사진은 박완서의 '나목'을 그래픽노블로 재탄생시킨 김금숙 작가의 '나목'.

만화계 오스카상 ‘하비상’ 수상한 김금순을 비롯 14명 작품 180여점

박완서 등단작을 ‘만화소설’로 표현한 ‘나목’, 오윤의 ‘원귀도’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박완서(1931~2011) 작가의 등단작품 ‘나목’(1970). 한국전쟁이 터진 이듬해 전쟁으로 인해 두 오빠를 잃고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그린 수작이다. 

지난 11월 9일 경기 안산시 경기도미술관에는 박완서의 나목이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로 되살아났다. 만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하비상 국제만화부문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의 펜 끝에서 살아난 ‘나목’은 전쟁의 참상과 슬픔을 전달하고 있었다.  

경기도미술관이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올해 마지막 전시로 기획한 ‘흰 밤 검은 낮’ 전이 내년 2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김금순을 비롯해 고산금, 김금숙, 김무영, 문영태, 송상희 등 14명의 작가가 참여해 전쟁 시대와 전후세대, 전후세대의 자녀 세대까지 아우르는 전쟁의 상흔을 담은 회화, 그래픽노블, 사진, 영상, 설치 작품 등 180여 점을 선보인다.

맨부커상 수상자인 한강의 ‘흰’에서 제목을 인용한 전시는 전쟁 세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겨울나무집 사람들’, 분단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은 경기 지역의 풍경을 담은 ‘흰 도시’, 전쟁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함께 추는 춤’ 등 총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월북 작가 이태준 기행문, 설치작으로 재현

먼저 ‘겨울나무집 사람들’에서는 끝나지 않았으나 잊힌 전쟁을 살아간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중 고산금 작가는 월북 작가 이태준을 애도하며 한국전쟁 때 출판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기행문 ‘조국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하여’의 일부를 발췌하고 필사해 동명의 작품 ‘조국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하여’를 제작했다. 

임흥순 작가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독립운동, 제주 4‧3항쟁, 지리산 빨치산 투쟁, 그리고 한국전쟁 등을 겪은 여성 4인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해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을 애도한다.

두 번째 공간인 ‘흰 도시’에서는 경기 지역의 분단 풍경을 묘사한 작품들을 살펴본다. 한국전쟁의 치열했던 전투 현장에는 종전과 함께 군사분계선이 들어선다. 이로 인해 경기 김포, 파주, 연천 등은 여전히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고,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DMZ(비무장지대)라는 아이러니한 공간이 탄생하기도 했다. 

전시에서는 30년 전 DMZ를 횡단하며 분단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 문영태의 ‘분단 풍경’, 국내의 가장 오래된 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의 미군 장교 숙소를 모형으로 설치한 정정주의 ‘미군 장교 숙소’, 그리고 아무도 돌보지 않아 무수한 잡초에 둘러 쌓인 북한군과 중국군 전사자 묘역을 포착한 전명은의 ‘적군의 묘’ 연작 등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분단의 아픔을 되돌아본다.

이와 함께 최민화 작가는 신문, 잡지에 보도된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차용해 이를 프린트하고 유채로 그린 ‘분홍’ 연작을 선보인다. 송상희 작가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도 재난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장소들을 영상에 담아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오윤의 ‘원귀’

한국전쟁 트라우마 좀비영화로 표현

마지막 공간인 ‘함께 추는 춤’에서는 전후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향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애도하며 분단의 문제를 다룬 한석경 작가의 사운드 설치작 ‘늦은 고백’을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했던 고양시 금정굴 사건을 영상에 담은 김무영 작가의 신작 ‘금정굴 프로젝트’ 등은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대한민국에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학철 작가는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희생자 사진 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한국현대사’ 연작을 선보인다.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트라우마를 좀비영화의 한장면으로 표현해 파괴적인 전쟁의 아픔을 탐색한다.

오윤은 ‘원귀도’를 비롯해 ‘원귀’, ‘팔엽일화’, ‘대밭’ 등의 작품을 통해 전쟁과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켜 그들의 한을 위로했다. 작고 직전에 완성한 ‘아라리오’의 경우 맺히고 풀리는 인물의 동작과 자세를 통해 민중의 한과 신명의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슬픔이 가진 힘에 대한 그의 통찰은 현재까지도 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예약제를 통해 제한된 인원으로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gmoma.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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