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장 미셸 바스키아 : 거리·영웅·예술’ 전… 천진한 낙서처럼 세상을 그렸던 ‘검은 피카소’
롯데뮤지엄 ‘장 미셸 바스키아 : 거리·영웅·예술’ 전… 천진한 낙서처럼 세상을 그렸던 ‘검은 피카소’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1.27 14:23
  • 호수 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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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150여점이 소개된다. 사진은 바스키아의 유작이 된 ‘Victor 25448'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150여점이 소개된다. 사진은 바스키아의 유작이 된 ‘Victor 2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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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2017년 5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무제(Untitled)’라는 제목의 작품이 출품된다. 얼핏보면 어린 아이가 사람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무려 1억1050만 달러(1230억원)에 낙찰됐다.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이 작품은 1980년대 이후 작품 중 1억 달러를 넘은 첫 작품이자, 미국 작가가 그린 작품의 최고가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바스키아의 미술 세계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2월 7일까지 진행되는 ‘장 미셸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에서는 ‘거리’ ‘영웅’ ‘예술’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스키아의 회화와 드로잉 등 15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초기 작품을 기록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바스키아는 그의 어머니가 뉴욕의 주요 미술관을 데리고 다닌 덕에 다빈치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 그림을 가까이서 접하며 자랐다. 

그러다 1978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하던 그는 친구인 알 디아즈와 함께 ‘SAMOⓒ’를 결성, 뉴욕 거리 곳곳에 낙서를 남기기 시작한다. 세이모(SAMO)는 ‘흔해 빠진 낡은 것’(Same Old Shit)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저작권 기호 ‘ⓒ’를 붙여 하나의 로고처럼 사용했다.

하지만 ‘익명’으로 남고자 했던 알 디아즈와 ‘스타’가 되고 싶었던 바스키아는 세이모 활동에 대한 이견으로 결별했다. 이후 우편엽서와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던 바스키아는 1982년 미국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재야의 낙서미술가에서 총망받는 예술가로 급부상한다. 1985년 앤디 워홀과도 협업 전시를 열었고, 이후 1988년 코트디부아르 이주를 준비하던 중 8월 12일 약물 과다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아이가 무심하게 낙서한 듯 자유분방한 화법이 특징인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는 알파벳과 단어, 문장과 드로잉을 자유롭게 조합하며 스프레이, 오일, 파스텔, 크레용, 유화와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제작 방식도 바스키아 작품의 특징이다. 깨알같이 글씨를 썼다가 지운 흔적이 그대로 작품이 되는 식이다. 

1981년 작 ‘뉴욕 뉴욕’에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어찌 보면 거칠게 낙서하고 지운 흔적이 그대로다. 뉴욕의 번잡한 거리를 묘사한 이 작품엔 그의 상징이기도 한 ‘왕관’과 얼굴, 그리고 암호 같은 글자로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당시 그의 작품을 본 비평가들은 “유치하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비난했지만, 현재는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욕 뉴욕’.
‘뉴욕 뉴욕’.

그의 작품에 해부학적인 인체 모습과 내장 기관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그가 7세 때 당했던 사고와 연관이 있다.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쳐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면서 지겨웠을 그를 위해 어머니는 해부학 입문서인 ‘그레이의 해부학’을 선물한다. 이 책을 계기로 해부학적 형상에 관심을 둔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이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작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거론되는 ‘다른 길 옆 들판’(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이 해부학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1981년 바스키아가 미국을 벗어나 처음으로 유럽(이탈리아)에서 열린 첫 개인전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가로 4m, 세로 2m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는 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형상의 인간이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 그려진 게 전부다. 동물의 죽음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비판해온 바스키아의 사고를 엿보게 하는 이 작품은 가격은 약 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어린 시절 꿈이 만화가이기도 했던 바스키아는 작품 속에 배트맨·슈퍼맨 등 만화 속 영웅들을 자주 등장시켰다. 1983년 작 ‘무제’(Untitled)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팔뚝에 문신을 새긴 괴력의 선원이었던 만화 캐릭터 ‘뽀빠이’가 등장한다.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고 거대한 팔로 악당을 무찌르는 캐릭터인데 바스키아는 골격과 근육, 힘줄을 거친 선으로 그리고,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검은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1982년 바스키아는 그의 인생을 바꿔준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만난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함께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공동 작업을 할 정도로 친밀해진다. 하지만 1987년, 수술 합병증으로 워홀이 죽자 바스키아는 큰 상실감을 느낀다. 이러한 슬픔은 그의 유작이 된 ‘Victor 25448’가 잘 보여준다. 바스키아 작품 속 특징인 유색 인종, 로고, 실험적인 단어, 비유와 상징이 모두 나타난다. 작품의 제목은 승리를 의미하지만 대조적으로 작품 속 인물은 패배한 듯하다. 유색 인종이 겪는 잔혹한 현실, 앤디 워홀의 죽음에 슬픔에 빠진 바스키아 자신을 나타낸다. 마치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하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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