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8]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138]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 승인 2020.12.04 13:35
  • 호수 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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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칠월 칠석이라 가을 날씨 이른데

오동잎 소리에 먼저 깜짝 놀라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강남의 나그네

여관에서 잠 못 이루고 빗소리를 듣네

七月七夕秋氣早 (칠월칠석추기조)

梧桐葉上最先驚 (오동엽상최선경)

欲歸未歸江南客 (욕귀미귀강남객)

旅館無眠聽雨聲 (려관무면청우성)

- 정호 (鄭澔, 1648~1736), 『장암집(丈巖集)』권1,「칠석(七夕)」


정호가 함경도 유배 중에 지은 시다. 음력 칠월 칠석이면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이곳은 북쪽 지방이라 그런지 서늘하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는 걸 천하가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라고 했던가. 오동잎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실감한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유배객 신세다. 마음이 착잡하니 잠이 올 리 없다.

정호는「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현손이다. 그는 1710년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다. 당론을 일삼는다는 죄목이었다. 한때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한 그는 죄인의 신분으로 다시 함경도 땅을 밟았다. 당시 그의 나이 63세였다. 유배생활은 한두 해 만에 끝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갑산은 변방의 오지다. 이미 노쇠한 몸은 극변의 모진 날씨를 견뎌내기 어렵다. 이대로 이곳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운이 좋아 일찍 이곳을 벗어난들 무엇하겠는가. 이미 정년퇴직할 나이다. 내 인생은 여기까지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읽던 주자(朱子)의 책을 꺼내어 일과를 정해 매일 읽었다. 때로 마음에 맞는 구절을 만나면 고달픈 신세를 잊기 충분했다. 두어 사람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로웠다.

노년에 유배지에서 다시 책을 손에 든 정호의 모습은 그의 선조 정철을 닮았다. 정철은 56세 때 평안도 강계에 ‘위리안치’되었다.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러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캄캄한 집안에서 정철은 『대학』을 읽었다. 소주(小註)까지 전부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중략)

정호는 갑산에 유배된 지 1년 만에 강원도 평창으로 유배지를 옮기고, 반년 뒤에는 완전히 풀려났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다시 환로에 오른 정호는 영의정까지 지내고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유배에서 풀려나고도 무려 24년이나 더 살았던 것이다. 갑산에 유배되었을 때 이제 내 인생은 끝이라고 포기했다면 말년의 화려한 성취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은 치열하게 살라는 뜻일 테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은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하략)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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